지난 주 토요일, 오랜만에 첫 회사 동기들을 만났습니다. 언제 마지막으로 만났는지 생각해보니 대략 5년이 넘었네요. 간간이 연락은 하고 지냈는데 실제 얼굴을 보고 얘기를 하니 반갑고 또 반가웠습니다.
동기들과 같이 시간을 보낸 건 신입 오리엔테이션 기간이었던 1달이 전부였지만, 벌써 15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성격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 다르지만, 그 인연들이 아직까지 이어진다는 게 참 신기합니다. (근데 요즘은 뭐 좀 오래됐다 싶으면 10년은 기본이네요 ㅋㅋ)
가장 반가웠던 동기는 부산 지사 동기였어요. 저보다 6살이나 어린 동기였는데 지사에 발령을 받자마자 일을 매우 잘했습니다. 가끔 만나 얘기를 들으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에피소드들을 들었습니다. (그 일을 네가 한다고?? 이런 느낌ㅋ) 그 당시 100명이 넘는 영업 동기 중에 일 잘하는 걸로 탑3 안에는 무조건 들어갔을 겁니다. 역시나 예상대로 2년 정도 시간이 지나고 그 동기는 팀의 에이스가 되었습니다.
음…
여기서부터 슬픈 예감은 현실이 됩니다.
일을 잘하니까 더 많은 일과 책임을 주었고
이 친구는 ‘어떻게든’ 해냈습니다.
해내니까 더 많은 일을 주고
더 과중한 목표량을 부여했습니다.
이 친구는 ‘어떻게든’ 해냈습니다.
‘어떻게든’ 해내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붙이고 옥죄었죠. 목표 달성이 삶의 제1순위였지만, 삶의 여유는 1도 없었습니다. 결국엔 그만두었습니다. 왜 이리 잘 아느냐면 저도 똑같은 이유로 그만두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첫 회사를 그만두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거래처 가던 길, 신호 대기 중에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주르륵 나는 거예요. 그러면서 아무 차나 내 차를 박아 병원에 입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차장에서 한참을 생각했고, 이대로 가다간 정말 큰일이 날 것 같아 다음날 사표를 냈습니다.
그때는 모든 게 힘들었습니다. 이때 얻은 마음의 병이 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친구가 그만둔다는 말을 했을 때 저는 그가 하나도 걱정이 안 되었습니다. 자기는 그전 생활이 너무너무 지긋지긋해서 퇴근 후 회사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되는 일만 할 거라고 했습니다. ‘퇴근하면 회사 생각 안 할 거야’라는 말을 곱씹을수록 쓴웃음이 났습니다. (이거 당연한 말 아닌가요? ㅎㅎ) 그 뒤로 편한 직장(철저히 그 친구 기준입니다)에 다니다가 현재는 카페와 샌드위치 가게를 창업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픽업 장소에서 동기를 태우고 모임 장소로 가면서 오랜만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동기가 서울에 올라온 이유인 아이유 콘서트 얘기도 하고, 저희 유유히 출판사 일에 대해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가게 운영하는 얘기를 들었는데, 듣고 보니 이 친구가 또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모는 것 같았습니다. 할 수 있는 목표보다 더 높게 목표를 잡고, 가게 직원들의 일처리가 자기 눈높이에 맞지 않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눈치였습니다.
동기의 이야기를 듣다가, 한 양궁 선수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실외에서 하는 경기, 양궁에서는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하죠. 그래서 사수들은 정확히 과녁을 조준해 쏘는 게 아니라 바람을 고려해 일부러 오조준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정확하게 과녁에 화살이 꽂힐 수 있는 거죠.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오조준 해야 10점을 맞출 수 있다’는 말이 멋있어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밥 먹고 수다 떠느라 제대로 말을 못 했지만 그 동기에게 '너는 일부러 오조준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넌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하니
마음의 여유를 갖고
일부러라도 나태하게(?)
느슨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여유를 갖고 일을 해도 충분히 잘할 사람인데
우리가 처음 일을 배울 때 잘 못 배워서
맨날 자신만 못살게 구는 것 같아.
가게 운영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자기를 돌보면서 했으면 좋겠다고
그래도 별일 안 생긴다고
그래도 네가 원하는 거 하면서
즐겁게 살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
오조준을 해서 10점이 아니면 어때!
오조준을 하지 않아서 과녁을 벗어난 것보단 낫잖아!
동기들과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그 주차장에서 한참을 울었던 날이 생각났습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나이는 많지만 훨씬 더 몸과 마음이 건강합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오조준하는데 10년이 걸렸네요.
앞으로도 오조준 하며 유유히~
삶을 사는 위트보이가 되겠습니다.
그래야 오래 할 수 있으니까요!
이번 위트보이 픽은 그랑핸드의 스프레이 오브(Aube)입니다.
얼마 전 에디터리님과 선물을 사러 그랑핸드 서교점에 방문했습니다. 그랑핸드 서교점은 마치 발리 호텔 로비에 들어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콘크리트와 나무 재료의 조화가 돋보였습니다. 매력적인 공간이라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방문을 추천합니다.(2층 카페 커피도 맛있어요)
원래는 선물만 사고 오려고 했는데, 시향한 오브 스프레이가 매우 마음에 들어 같이 사 왔습니다. 욕실에 놓고 아침에 한 번씩 뿌리는데요. 그러면 하루 종일 은은한 숲속 향기가 느껴져 기분이 좋아집니다. 재택근무자의 잔잔한 기쁨이 또 하나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