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히를 시작하기 전에, 에디터리에게도 퇴근만 기다리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상사 비위 맞추느라 마음이 너덜너덜하던 순간들, 내 맘 같지 않아서 힘들게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눈치 보던 날들, 출근길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던 아침들 말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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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저 멀리에 있는 거였어...
서울과 멀어지고 나면 찐텐이 올라가던 에디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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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내가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이곳을 떠나면 비로소 숨이 트이곤 했습니다. 그렇게 휴가를 기다려 연차 15일 중 12일은 한번에 소진했습니다(이렇게 다녀오고 1년을 어떻게 버티겠다는 거야? 절레절레 하던 주변 분들 얼굴이 떠오릅니다).
거금을 들여서 인생 도시 바르셀로나를 만나기도 하고, 이름만으로 로망 도시로 여기던 프라하도 다녀왔습니다. 코로나 직전에 위트보이가 운영하던 바틀샵을 닫고 함께 새해를 맞이했던 치앙마이가 마지막 해외여행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녀오고 나면, 어김없이 지긋지긋한 일상이 기다렸습니다. 설득에 설득을 하고, 의견 조율을 하고, 정치싸움에 휘말리고, 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 대표의 지시를 전달하는 일. 책을 만드는 일이야 얼마든지 즐겁게 할 수 있는데도, 일을 제대로 하기까지 드는 에너지가 너무 컸습니다. 미간을 찌푸리고 자고, 눈을 뜨고 잠들기까지 내내 신경은 회사에 가 있고, 입만 열면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돼'를 중얼거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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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돈 주고 사는 게 맞던데요..?
2014년, 2015년, 2017년 인생도시 바르셀로나에서 일주일씩 살던 시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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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들 끝에, 버튼을 눌렀습니다.
퇴사.
참아야 했던 것들로부터 깔끔하게 끝나는 일은 좋았지만 애정하는 사람들과 멀어져야 했고 안정적인 수입은 떠났습니다.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고, 온갖 수모를 안겨줌과 동시에 어쩌면 그 안에서만 가능했던 여유를 집어던진 일은, 대형 크루즈를 버리고 2인승 나룻배에 타는 일과도 같았습니다.
망망대해에 몸을 맡기고 노를 젓기 시작했습니다.
그 안에 타고 있으면 어디로 향하는지,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 전혀 모르고 살았는데
이제는 바다 위로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 내리쬐는 햇빛의 뜨거움을 오롯이 느끼고 매일 실감합니다.
이 모험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퇴사, 그 이후로 저는 행복을 찾았을까요? 내 모양대로 살고 싶다는 바람은 이루었을까요?
유유히토커 님들의 눈에는 유유히가 어떻게 비치고 있을지 궁금한 순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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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어들자마자 단숨에 읽을 것 같은 마음을 가라앉히느라 혼났던 <무정형의 삶> 책 이야기를 잠시 해볼까 해요.
김민철 작가님의 여행기라면 무조건 끄덕끄덕 고개를 쉼없이 흔들게 되는데,
무려 20년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그동안 가슴속에 깊이 품었던 로망의 도시
파리에서 두 달 동안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온 이야기입니다.
파리에서 한 일이라고는
- 매일 그날의 기분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주저 없이 틀기
- 아침마다 갓 구운 트라디(첨가물을 넣을 수 있는 바게트와 달리, 법으로 정해둔 전통 방식 그대로 만든 빵) 먹기
- 스무살 때 처음 알게 된 뒤로 매번 파리에 올 때마다 지체없이 달려갔던 퐁피두센터 가고 또 가기
- 시장에서 장을 보고 꽃을 사고 일상을 살아가기
- 그토록 좋아하는 치즈를 치즈가게에서 종류별로 매일 맘껏 먹으며 배우기
- 낯선 사람의 초대에 응하고 달려가기
- 그리고 싶었던 그림을 마음껏 목적 없이 그리다 마음껏 실패하기
- 돗자리를 펴고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 보내기 등
김민철 작가는 파리에서 하루에 주어지는 24시간이란 선물을 '살고 감동하고 사랑하는 일'로 가득 채워갑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깨닫습니다. 조직 안에서 뾰족하고 낯가리고 자책하던 자신, 바쁘다는 말을 달고 살던 자신은 원래 그 모습이 아니었음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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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안에서 좁게, 아주 좁게 시선을 유지하고 있을 땐 그 삶만이 가능한 줄 알았다. 내게 주어진 선택지 중 최선의 선택지를 뽑은 거라 믿고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다른 모양의 삶들이 있었다. 그것도 무수히 많이 있었다. 짐작조차 하지 못한 뾰족함을 품고 좁은 길을 온몸으로 밀며 나아가는 삶도 있고, 두려움을 마주하고 자신의 세계를 지키는 삶도 있다. 누군가가 만들어준 안전한 울타리가 없어도, 스스로 하고 싶은 일들을 울타리로 세우며 살아가는 삶도 있다.
이런 용기를, 저런 대범함을, 이상한 긍정을 파리에서 만났다. (p.2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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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낭비되던, 타인들에 대한 신경 버튼이 모조리 꺼졌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니 “인상”이 좋아졌습니다. 표정과 얼굴빛에서 자연스레 드러나는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어디론가 떠나야만 버틸 수 있었던 일상이, 참 신기하게도 어딘가에 메여 있지 않으니 어디든 갈 수 있으니 안 가도 괜찮습니다. 하루하루 눈 뜨고 편안한 마음으로 마주칠 사람 없는 1인 사무실로 출근해서, 내게 스스로 일을 부여하고 할 수 있는 만큼 해내고 있는 자유를 누리는 건 충분히 할 만했네요.
생각보다 일도, 루틴도 스스로 잘 해내고 있습니다.
조직에서 벗어난 뒤 뭐든지 일단 해보자는 태도를 갖게 되었습니다. 인터뷰어가 되어 책도 쓰고, 편집자 강의도 해내고, 팟캐스트/유튜브/릴스 뭐든 시도해봅니다. 나를 믿어주지 못한 그간의 나에게 미안하기도 합니다. 스스로 한계 짓고 조직을 벗어나면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하고 겁을 먹고 있었네요.
수입이 줄어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도 다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다르게 다른 길을 가고 있어 불안한 감각은 생각보다 덜 듭니다.
또 생각보다 빠르게, 직장인 시절이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앞날만을 보느라 바빠서 그런 걸지도요.
어떤 일이든 인생에서 '완성'은 없고, '그 뒤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결말을 지을 순 없는 것 같아요. 살아있는 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내가 맘에 안 들면, 불행 속에 있다면,
나를 구해줄 사람도 나라는 사실 하나만 믿고서 움직이면 됩니다.
생각보다,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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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목요 <바다의 얼굴들> (엣눈북스 2024)
지난 토요일, 8월 31일에 2024 여름의 대미를 장식할 정동진 서핑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네 작년의 서핑 장소였던 '카라멜서프하우스'로요. :) 올해는 수영친구들 물개즈와 함께였습니다.
가는 길에 "이스트씨네"도 들렀습니다. 저의 사랑하는 친구가 운영하고 있는 정동진의 독립서점입니다. :)
그곳에서 책을 고르다 이 책을 발견하고, 그래, 이 책은 여기서 사야지 했습니다.
바다니까요.
김목요 작가님의 연필 그림을 참으로 좋아합니다. 반짝이는 윤슬과 물의 울렁거리는 움직임까지 세세히 그려내는 작가님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고요하고 차분해지는 마음이 듭니다.
책은 보다시피 정말 아름다워요.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골똘히 바라보게 됩니다.
바닷가 마을에서 살았던 한 시절을 정리해낸 한 권의 책이 반짝입니다.
아름다운 책이 필요할 때 찾아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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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를 꿈꾸는 선생님들 유유히 방문 기념
함께 배우는 올차캠프에서 이번에 만난 유유히팀 "서서히" 멤버분들과 미팅을 가졌습니다. 유유히 사무실을 보여드릴 겸 플랫폼P로 초대해 차를 함께 마시며 즐거웁게 이야기를 나눴어요.
서서히 팀은 저의 책 원고 <내 인생도 편집이 되나요>를 읽고, 꼼꼼히 편집기획안을 작성해 발표회를 갖는데요. 다음 달에 각자가 그릴 책의 모습이 기대됩니다.
응원하고 있을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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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팟캐스트 <두둠칫 스테이션> 🎧
EP109. 방송을 만들 때 고민하는 일 '오학준의 주변'(오학준 PD, 지다율 편않 편집자)[커피타임]
회사를 다니면서 '나만 이상한가'라는 생각에 글을 쓰기 시작한 오학준 PD.
출판공동체 편않으로 활동한 지 벌써 7년째인 지다율 편집자.
이 두 사람이 편않의 언론출판인 시리즈 '우리의 자리' 6번째 책으로 출간된 '오학준의 주변'을 들고 나왔습니다.
편집자는 저자가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지 다 알았다기보다 쓸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사람이 아닐까. 그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내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는 오학준 PD님과 일정이 자꾸 밀리고 밀려서 곤란하다는 지다율 편집자님의 케미는?
쉴 때 예능 정주행하는 사람, 뉴스를 보면서 의문이 나는 게 많은 사람, 도파민에 절여지고 싶어 리얼 프로그램을 끝도 없이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오학준의 주변'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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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학준, '오학준의 주변' (편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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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 시스템이 바뀌었습니다.
페이지를 누르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게시판이 열려요. 보다 쉽게, 서로의 피드백을 함께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2024 새해부터 변경되었음을 알립니다. 위트보이와 에디터리의 답장도 그 밑에 답글로 달아둘게요. 이번 주 답장도 잘 부탁드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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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유유히 레터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주 레터는 위트보이 님이 보내드릴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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