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모이면 각자의 엄마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을 터트리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그때의 우리 엄마와 친구네 엄마는 꼭 누구나의 엄마 같다. 엄마에게 들은 황당한 잔소리, 엄마의 웃긴 말실수, 엄마만이 짊어지는 생계, 짜증 나서 눈물이 터지는 엄마식 사랑은 마치 같은 엄마에게서 나온 에피소드 같다.
어느 날 조금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애를 낳을 계획은 전무하지만 만약 내 아이가 생긴다면 그 아이는 지금까지의 내 인생사를 전혀 모른다. 내 아이는 이렇게 철부지 애가 애를 낳은 줄도 모를 텐데 하는 괜한 걱정이 든다. 멋지기도 슬프기도 하며 다채롭게 살아낸 내 삶에 대해 내가 말해주지 않은 한 모른다니.
그런데 그건 내가 엄마를 엄마로만 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엄마가 말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엄마라는 사람의 진면모.
엄마의 허둥대는 얼굴과 반짝이는 명랑함 같은 것.
그러니까 엄마의 시험지와 엄마가 엄마의 엄마 몰래 샀을 한 장의 음반 같은 것.
“기사 아저씨, 이 버스 거기 가요?” 묻는 꼬마 엄마의 목소리와 ‘깜빡 잠들었네… 더 잘까…’ 하는 게으른 얼굴 같은 것.
그런 건 꼭 엄마가 먼저 말해줘야 할까?
알아보려고 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우선 필요할지도 모른다.
<엄마만의 방> p.25
그 마음을 담아 사랑으로 표현한 만화 『엄마만의 방』은 김그래가 처음으로 타인을 주인공으로 선보인 작품이다. 그간 ‘나’에 초점을 맞춰 만화를 그려온 김그래는 ‘한 명분의 엄마 이야기’를 ‘딸과 엄마로 산 이들의 이야기’로 그려내며 공감의 영역을 더욱 확장시킨다. 이 책을 계기로 어쩌면 김그래 스스로 그간 꺼내 보이지 못했던 이야기를 누구나의 이야기가 아닌 누군가의 이야기로 더욱이 세밀하고 뾰족하게 그려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들기도 했다.
홀로 베트남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엄마의 이야기처럼, 타인의 이야기로 새로운 작품을 그려낸 김그래의 첫 시작을 뭉클하게 읽었다. 김그래의 오랜 독자라면 마음 뜨겁게 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내가 또 누군가의 딸이라면.
『엄마만의 방』은 딸이 엄마를, 엄마가 딸을 멀찍이 바라보며 새삼스러워 하는 ‘너무 늦은 처음’을 그린다. 다 안다는 듯이 굴었던 지난 시간을 아쉬워만 하지 않고 새롭게 도착한 서로의 하루를 엄마와 딸 모두 아이처럼 반기는 에피소드들은, 김그래표 보들보들 만화 칸 안에 부드럽게 담긴다. 그건 곧장 나의 엄마를 그리는 마음이 되는데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읽는 딸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웃게 한다. 엄마의 이야기란 참 이상하다. 웃고 있는데도 자꾸만 눈가가 촉촉해진다. 떨어져 사는 엄마에게 날씨 핑계를 대면서 커피 기프티콘이라도 보내고 싶어진다. 엄마에 대한 만화를 읽다가 별안간 눈물이 나서 연락했다고 하기엔 쑥스럽기 때문이다.
『엄마만의 방』 속 엄마가 엄마만의 방을 찾게 된 여정은 쉰 살이 넘어 베트남으로 떠나며 시작된다. 물리적으로 멀어진 날을 기점으로 엄마와 딸 둘은 각자의 새로운 하루를 그리며 따로 또 같이 내일로 향한다. 엄마와 붙어살던 딸은 엄마와 따로 살면서부터 나와 엄마를 떼어놓기로 다짐하는데 그 과정에서 겪는 촘촘한 마음 쓰임은 어른이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딸 앞에서의 모습이 엄마라는 사람의 전부가 아니었다는 당연한 사실. 그리고 다 큰 어른이 된 데에는 번번이 엄마가 있어주었기 때문이었다는 자각 또한 따라붙는다. 그건 같이 살면서는 보지 않았던 엄마의 모습들이었다.
<엄마만의 방> p.46
딸인 김그래는 먼 타국에서 전해오는 엄마만의 에피소드를 일상적으로 들으면서 같이 살 때의 엄마를 이해하는 동시에, 엄마 자신에게도 새로울 엄마의 표정을 상상한다. 그건 어쩌면 독자적 체험이기도 하다. 한 사람만을 위한 연재의 유일한 독자가 되어보는 체험. 그런데 이제 발행자가 엄마라서 딸로서의 내 마음까지 읽게 되는. ‘이건 일간그래 잡지에 N년 동안 연재했던 베트남 원정기를 모아 낸 책입니다 ’하고 이름 붙일 만한 이야기들은 유일한 독자인 딸을 통해 정말로 한 권의 책이 되었다.
나는 『엄마만의 방』을 읽고 멋대로 아찔하게 느낀 것들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내가 없던 시절의 엄마를 모르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김그래는 엄마의 오랜 독자로서 이렇게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들으려고 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엄마만의 이야기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뿐만이 아니라고. 내일로 향하는 오늘자 엄마의 이야기를 우선 들어보자고 말이다. 엄마를 읽어내기로 작정한 딸이 그려낸 만화는, 앞으로 엄마에게 건넬 말 한마디를 잠시나마 고르게 만든다.
엄마에게 쉽게 짜증을 내버리면 결국 그 짜증은 곧장 후회로 바뀐다. 쉬운 짜증은 다 안다는 착각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엄마가 내 회사 상사라고 생각하고 말을 해보라는 말도 있는 게 아닐까. 그러면 “안 먹는다고-_-” 하던 말이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따가 먹겠습니다^.^” 하게 된다고 말이다. 그쪽이 결국 나에게 좋지 않느냐고. 후회의 눈물도 없고 “아까 짜증 내서 죄송해요…” 따위의 메시지를 보내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엄마만의 방』을 읽고 나는 그냥 엄마를 엄마로 보기로 했다. ‘아직 모르는 면이 더 많은 엄마’로 보기로. 지금의 내가 지금의 우리 엄마를 얼마나 모르는지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나만의 엄마가 보인다. 아직 내가 모르는 게 많은 엄마가. 그래서 귀엽고 그래서 소중한 우리 엄마가.
<엄마만의 방> p.71
책을 다 읽고 엄마와의 통화가 생각났다. 그날의 전화 용건을 김그래식으로 풀어보자면 “엄마만의 마라탕”이라 표현할 수 있겠다. 몇 해 전이었다. 엄마는 동네에 새로 생긴 마라탕 가게 앞을 지나다니기만 하다가 용기를 내서 혼자 들어갔다고 했다. “처음인데 어떻게 먹는 거예요?” 물어보니 자기 또래의 직원분이 처음부터 끝까지 친절하게 알려줬다고 한다.
“생각보다 쉽더라고. 하도 텔레비전에서 마라탕 마라탕 거리길래 궁금했는데 이제는 맛을 알아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마라탕을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네!”
엄마의 들뜬 목소리를 듣고 그날 나도 조금 씩씩해졌던 기억이 난다. “엄마 그래서 또 먹으러 갈 거야?” 물었더니 “응. 엄마 스타일이더라. 근데 아빠랑은 안 가려고. 같이 가면 귀만 아프고 내 속도로 먹고 싶어” 하고 답하는 엄마다. 우리 엄마라는 사람의 생에 언제나 계속되었을 이 명랑함을 계속 업데이트 받고 싶다.
친구들과 각자의 엄마 에피소드에 서로 공감하며 같이 울고 웃을 수 있는 건, 우리들의 엄마가 엄마이기만 한 게 아니라 그저 우리가 딸로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만의 방』은 엄마 앞에서는 언제까지 딸이기만 할 우리들에게 가장 슬픈 말을 숨겨둔다. 엄마를 대하는 이 새롭고도 부드러운 시선은 결국 딸이라는 우리를 위한 마음이 되어줄 거라고.
<엄마만의 방> p.253
임진아
출판만화 응원가. 출판만화의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꾸준히 힘을 내며 살아보겠습니다.
읽고 그리는 삽화가이자 생활하며 쓰는 에세이스트. 만화와 닮은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며 『빵 고르듯 살고 싶다』 『아직, 도쿄』 『오늘의 단어』 『읽는 생활』 『듣기 좋은 말 하기 싫은 말』 『팥: 나 심은데 나 자란다』 등을 부지런히 썼습니다. 종이 위에 표현하는 일을, 책이 되는 일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