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출판사를 시작한다는 결단에는 생물학적 나이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올해 마흔, 앞으로 책 만드는 작업을 얼마나 더 오래할 수 있을까 셈해봤죠. 1년에 6~7권을 꾸준히 내던 대리-과장의 시절을 지나 부서장이던 작년에는 3~4권을 내고 조직에서는 점점 관리직으로 책 만드는 일을 놓고 있었습니다.
아니, 계속 독자의 필요를 찾고, 글 쓰는 재능에 감탄하며 저자를 찾고, 의기투합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은데, 이러다가는 제가 사랑하는 ‘편집자’라는 정체성도 사라지겠구나 하는 슬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여전히 책을 잘 만들고 즐겁게 할 수 있어도, 종일 판단하고 조율해야 하는 일들에 시달리며 위아래에 끼어 감정노동도 대단했고요. 이대로 살 수는 없다, 앞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일을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더불어 이 고민은 내게 주어진 시간이 앞으로 얼마나 있을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한정된 인생이라는 것과도 맞닿았습니다. 생각만 해도 미간이 찌푸려지고 무표정하게 굳는 내 얼굴을 느끼며 일상을 견디고 있다는 자각. 언제든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터질 것 같은 울렁이는 마음. 자려고 누우면 한없이 부정적인 상상들이 머릿속을 무한히 맴도는 스트레스.
최근에 펼쳐든 김신지 작가님의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속 이 부분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어요.
이사 날짜가 다가오던 것처럼 지금도 시시각각 삶의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면, 내가 가진 마음과 에너지를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시간을 보내는 데 써야 했다. 만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을 만나 소속감과 안정을 구하고, 정작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날 시간을 미루는 방식으로 삶을 허비하는 게 아니라. (p.142)
그래서 더 생각하게 된다. 삶은 결국 내가 한 무수한 선택으로 이루어질 텐데, 어떤 선택은 나를 희미하게 하고 어떤 선택은 나를 또렷하게 할 텐데 그때마다 헤매지 않으려면 기준이 필요하다고. 그건 대단한 무언가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이를테면 욕심이 마음을 탁하게 해 선택이 어려운 순간에는, 손가락에 붕대를 감은 채 서 있는 여섯 살의 나에게 설명하기에도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하면 된다는 것. 우리 안에는 그런 길잡이 같은 아이가 살고 있을 테니까. (p.2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