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드러지게 핀 꽃들을 시샘하듯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칩니다.
서울은 오늘 초여름 날씨에 드디어 벚꽃 소식도 들리는데, 남쪽 제주는 내일까지 비 소식이네요.
미국에서 살고 있는 동생네 부부가 조카 둘을 데리고 잠시 한국에 왔습니다. 그리고 저희 할머니와 친척들을 보러 제주로 내려왔지요. 반가움과 어색함이 교차하는 가족 행사를 치르고 부모님과 동생 가족은 오늘 육지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랜만에 제주 여행을 하고자 홀로 2박을 더 하고 가기로 했습니다. 다만 노트북을 곁들인... 그렇게 한동리 숙소에 앉아 레터를 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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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저에게 방학 때마다 의무적으로 가야 하는 할머니댁이었습니다.
맞벌이 부부였던 부모님은 열 살 무렵부터 저를 혼자 비행기에 태워(그때는 청주 공항도 없던 시절, 광주 공항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가야 하는.. 상상만으로도 멀미가 나는 멀고 먼 길이었습니다. 실제로 버스 안에서... 이하생략) 제주에 보냈습니다.
공항에는 고모나 막내 삼촌이 마중 나와 있었죠. 엄마 아빠가 보고 싶고 밉고 복잡한 마음으로 있자면, 고모가 맛있는 걸 사주거나 삼촌이 탑동 놀이동산에 데려가거나, 주말이면 친척 어른들, 사촌동생들과 여기저기 관광단지로 놀러가서 사진을 열심히 찍었습니다.
즐거운 일이 마땅한데도 항상 착한 아이로, 할머니 말 잘 듣는 아이로 참고 있어야만 하는, 어딘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맘이 쉽게 편해지지 않던 날들이었습니다. 그래도 한창 젊던 고모와 삼촌이 어린 조카들을 데리고 열심히 놀아준 건 지금 생각해봐도 참 고마운 일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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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을 그만두었던 2010년 즈음, 제주 올레길이 한창 인기가 있었습니다. 걷는 걸 좋아해서 산티아고 순례길도 위시리스트에 넣어두고 있었는데, 우리나라에도 그런 길이 생긴다는 게 너무 신기했죠. 그때가 제주 이민이 막 시작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올레길 코스를 따라 게스트하우스나 카페가 하나둘 생겨났고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1코스부터 정직하게 완주하고 도장 찍고, 서귀포 풍경 좋은 7, 8 코스를 연달아 걸어보았습니다. 걷다 보면 무겁고 답답했던 마음이 하나씩 비워져, 발이 무거운 만큼 속은 후련해지더라고요.
올레길은 올레 깃발이나 표식을 찾아 걷기만 하면 됩니다. 대로변이나 차가 다니는 길은 피하고, 구불구불 마을 숨은 풍경으로 이어지거나 언덕에 올라 탁 트인 풍경을 보고 내려오게 합니다. 목적지까지 단순히 빨리 가는 게 목적이 아니라, 놀멍 쉬멍 걸으멍 내 발이 닿는 길의 양쪽 풍경을 찬찬히 바라보게 만듭니다.
해안도로 쪽을 걷다 보면 파도소리가 걷는 내내 왼쪽 혹은 오른쪽에서 들려오기도 하고요. 그렇게 구석구석 걷다 보니 나름 요령이 생겼습니다. 코스의 처음과 끝, 완주가 아니라 제가 도착한 숙소 중심으로 가까운 올레길 아무데나 시작해서 걷다가 힘들면 멈추고 돌아오는 식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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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예약해둔 숙소를 찾고 짐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길부터 시작해 올레길을 걸었습니다. 표식이 헷갈릴 때도 있는데 요즘은 카카오맵이나 네이버앱에 올레길 코스가 다 그려져 있어 아주 편리합니다.
뻥 뚫린 수평선을 바라보다 물빛에 감탄하다 바람에 흔들리며 걸었습니다. 검은 돌담과 그 사이 초록 식물과 노란 유채꽃들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오늘 밤도 나를 무겁게 하던 걱정들을 미뤄두고 푹 잘 수 있을 듯합니다.
올레길을 걷는 건 자유입니다. 돈도 들지 않지요. 언제든 떠날 마음과 티켓, 숙소만 구하면 됩니다. 걷다 보면 길동무도 생깁니다.
코로나 시국이었던 몇 년 전에는 대구에서 간호사를 하다 암투병을 오래하던 아들을 보내고 먹먹한 마음을 달래러 오신 아주머니와 두세 시간을 같이 걷고 함께 저녁을 먹고 서로의 갈 길을 응원하며 헤어졌어요.
시선을 한 방향으로 향한 채 같이 걷는 일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나도 모르게 마음에 깊이 담아둔 이야기를 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인생의 찰나 같은 순간이지만 올레길을 걸을 때마다 떠오릅니다. 연락처도 이름도 모르는 상태로 헤어졌지만, 올레길을 걷다 보면 또 언젠가는 우연히 마주칠 수 있으리라 믿어요.
내일은 비가 잦아들길 바라며 이만 누워야겠어요.
푸르른 향을 머금은 숲길을 찾아 걸어야겠습니다.
일상에서 최대한 먼 곳으로 달려온 만큼 지칠 때까지 걷다가
한껏 후련한 얼굴로 돌아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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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이 여행자들을 위한 짐옮김이 서비스
제주 여행 중 게스트하우스 체크인 관련 문자를 받았습니다.
[짐옮김이를 이용하신다면 업체에서 밖거리에 가방을 가져다 둘 거예요]
[만약 짐옮김이를 신청하셨으면 대문 말고 검정 현관문 안에 두고 가시면 됩니다]
숙소를 연박으로 신청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텐데, 보통 여행 루트에 따라서 숙소도 여러 곳에 묵기도 하지요. 이때 렌트를 했으면 짐이 아무런 부담이 안 되는데, 버스를 타고 이곳저곳 다니는 경우에는 체크아웃과 동시에 묵고 있던 숙소에 짐을 맡겨두거나 다음 숙소에 미리 짐을 가져다두고 여행을 시작하는 편이 낫습니다.
이런 번거로움을 해결해주는 서비스가 '짐옮김이' 였어요.
같은 게하에 머문 00년생 친구가 말하길, 다음 날 체크아웃과 함께 공항으로 짐옮김이 신청을 하려고 했더니, 자리가 모두 차서 예약이 안 된다고 택시로 이동해야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이틀간 숙소 체크아웃-체크인을 하면서 버스를 타는데 캐리어를 들고 번거롭고 바쁜 사람은 저 하나였다는 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죠.
아! 나 빼고 다 이용하고 있었구나?!
캐리어 하나당 비용이 대략 1만원 선이니, 택시비가 보통 2~3만원 하는 거리 이동에 비해 적당해 보입니다. 심지어 재밌는 건, 실제로 캐리어가 여행 중인 것처럼 인증샷을 찍어주는 서비스("가방은 여행중"이라는 업체입니다)까지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어요. ㅎㅎㅎ
너무 귀엽다는 평들이 대부분입니다.
다음에 한번 서비스를 이용해봐야겠다, 마음 먹고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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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은 여행중' 업체 후기로 올라온 사진. 주인인 나와 따로 여행을 다니는 캐리어라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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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먹는 아이> 부산 아르케 책방 북토크 성황리에 마쳐❤️
지난 3월 30일 토요일 부산 송정역 앞 아르케 책방에서,
도대체 작가님 북토크가 있었습니다.
예스24 동네책방 콜라보 북토크로 열렸는데요,
책방 대표님께서 행사를 위해 예쁜 꽃도 준비해주시고
맛있는 커피도 대접해주셨습니다.
도대체 작가님은 <기억을 먹는 아이>를 집필하면서 했던
여러 가지 생각들을 이야기해주시고,
자리에 오신 독자님들과 이야기 하나하나에 대한 생각들을 자유로이 나눴지요.
북토크가 끝나고, 작가님과 맛있는 막창(해성막창이라고... 소근소근)을 먹고,
달맞이고개를 걸으며 이른 벚꽃 구경까지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자리를 마련해주신 아르케 책방 대표님과 함께해주신 독자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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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마주친 영화 장면 같은 풍경에서, 인증샷 찰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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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도서관저널 '이달의 책' (청소년 문학 부문)
<기억을 먹는 아이> 선정 소식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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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만화가협회 4월 이달의 출판만화 <데쓰오와 요시에> 선정
한국만화가협회에서는 매달 '이달의 출판만화'를 뽑습니다. 이번 4월에 <데쓰오와 요시에>가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보고 역시~~!! 했습니다. ^^
저희가 출품하는 것이 아니라서 더욱 뜻깊었습니다.
<데쓰오와 요시에>뿐 아니라 3권의 만화책도 선정이 되었는데요.
읽을 만한 만화책을 찾고 있다면, 아래 버튼을 눌러보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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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팟캐스트 <두둠칫 스테이션> on air!
EP.95 ADHD인 여러분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안주연 정신의학과 선생님, 정유민 편집자) [커피타임]
혹시 당신은 학교에서나 회사에서나 지각쟁이?
혹시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거나 약속장소를 헷갈리거나
내릴 역을 종종 지나치나요?
뭐든지 꽂히면 일단 만사 제쳐두는 타입?
뭐가 필요할지 몰라 가방에 무엇이든 들고 다니는 걸어다니는 보부상의 운명?
'사는 게 왜 이렇게까지 힘든가' 번아웃이 자주 찾아온다면 <어쩌면 ADHD 때문일지도 몰라>를 권해드립니다.
왕년의 '두둠바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안주연 선생님과
'김의심' .. 아니 ADHD 진단을 받고 새로 태어난 정유민 편집자님과 함께
당신의 도둑맞은 주의력과 잃어버린 아침을 찾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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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 시스템이 바뀌었습니다.
페이지를 누르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게시판이 열려요. 보다 쉽게, 서로의 피드백을 함께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2024 새해부터 변경되었음을 알립니다. 위트보이와 에디터리의 답장도 그 밑에 답글로 달아둘게요. 이번 주 답장도 잘 부탁드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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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유유히 레터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주 레터는 위트보이 님이 보내드릴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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