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웹예능 <사상 검증 구역: 더 커뮤니티>를 보다가, 출연자 ‘낭자’의 인생 스토리를 들었습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문제집 하나 못 사던 미성년자가 합법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어서 새벽 편의점 알바, 공장에서 꼬치 끼우던 알바를 전전하는데, 사장들은 ‘도의상 어린 너에게 일을 시키는 게 양심에 찔린다’며 급여일 하루 앞두고 잘랐다고요. 월급을 떼먹던 파렴치한 사장의 행태였는데 당사자였던 자신은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고 마음이 무너졌겠지요.
낭자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언제 돈을 처음 벌었더라 기억을 소환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첫 아르바이트는 초등학교 6학년 때였습니다. 친구들 중 누군가 아파트 현관마다 전단지 붙이는 아르바이트가 있다, 한 시간에 천 원씩 준다며 주말에 서너 명을 모았습니다. 새로 생긴 피자집이었고, 근처 아파트 단지에 저희를 우르르 내려주고는 전단지 버리지 마라, 다 검사할 거다 하는 사장님 말이 무시무시한 법처럼 들렸습니다.
15층을 누르고 1층까지 계단으로 뛰어 내려오면서 스카치테이프로 한 장씩 문 앞에 붙였습니다. 하필 그 타이밍에 문을 열고 나오는 아주머니와 마주치기도 했고, ‘멍멍’ 짖는 개 소리에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4시간 정도 지나고 나니 다리가 후들후들 잘 걷지도 못하겠더라고요.
그럼에도 제 손으로 용돈을 벌었다는 게 신이 났습니다. 바로 뭘 사지도 않고 집에 가서 천원짜리를 펴 보이며 엄마에게 자랑을 했습니다. 피자도 사 먹지 못할 돈이었지만 3~4천원쯤 벌었던 게 얼마나 뿌듯했던지요. 이후로 중국집도 종종 했던 것 같아요. 중국집에서는 짜장면 먹고 가라고 인심도 내어주셨고요. 돈을 떼어먹힌 적은 없지만 그 돈이 적절한 인건비였을까, 돌아보면 그렇지도 않았던 것 같네요.
이후로 중고등학교 때는 따로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까지 안 해도 되는, 괜찮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청원경찰로 근무했던 아빠의 월급과 한의원 탕약실에서 하루 10시간씩 쉼 없이 일했던 엄마의 구슬땀 덕분에요. 풍족하진 않아도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지나갈 수 있는 날들이었죠.
|
|
|
추억의 오락실 게임. <바쁘다 바빠 햄버거 주문>
빨강, 초록, 파랑 버튼에 따라서 위에 나온 햄버거 주문대로 쌓는 게임이다.
중요한 건 스피드와 정확성. 실제 햄버거 만드는 일과 똑같다. |
|
|
수능 이후 첫 알바는 버거킹이었습니다(그전엔 비싸서 가보지도 않았던 햄버거집이었다는 고백..). 패스트푸드점에서 유니폼을 입고 아르바이트 하는 게 왜 그렇게 좋아 보였던 걸까요. 당시 이메일 친구였던 김광진 아저씨(네, 그 <편지> <마법의 성>을 부른 분이요 ㅎㅎ)는 저에게 “그거 아니? 크게 성공한 사람은 모두 햄버거집 아르바이트를 했던 사람이라는 걸”이란 말로 알바를 가는 저에게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주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따뜻한 응원에도 불구하고 저는 두 달을 못 채우고 짤리고 말았습니다. 햄버거를 만드는 게 영 서툴고, 느리고, 치킨 너겟을 꺼내려다가 손등에 화상이나 입고, 무엇보다 가족 여행을 가야 한다며 일주일을 비우겠다고 매니저님에게 통보를 했더랬습니다. 서서히 저의 스케줄이 사라지더라고요(?) 그렇게 자연스러운 페이드아웃으로 첫 알바는 끝이 났습니다. ㅎㅎ
이후엔 집 가까운 데서 아르바이트 하는 게 최고라는 생각에 아파트 상가 1층 비디오대여점에서 주말 알바(오전 10시~밤 10시, 시급 1,800원부터 시작해 두 달째 1,900원, 세 달째 2,000원으로 올려주는 시스템), 상가 2층 세븐나이츠(투다리 같은 곳)에서 서너 달쯤 아르바이트(평일 저녁 6~12시, 시급은 대략 3,000원이었을 듯)를 거치고, 시급을 잘 주는 곳으로 가야겠다 싶어서 대전에 당시 역대급 큰 규모 개장을 앞둔 마트 까르푸 베이커리에서 일하게 됩니다. 최저시급이 4,100원쯤이던 시절이었는데, 최저 시급에만 맞춰줘도 오전 7시~오후 4시(휴게 1시간) 근무, 너무 바쁘면 두 시간 정도 연장(연장근무는 시급 x1.5배)하며 두 달 일하니 300만 원쯤 벌더라고요.
내내 서서 일하는 게 고되긴 했지만 여름 방학 동안 좋아하는 빵 냄새 맡으며 빵을 맘껏 먹으며 사람들과 즐겁게 일했습니다. 맛있는 빵이 온전한 육체 노동으로 만들어지는 귀한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죠. 뜨거운 대형 오븐 앞에서 내내 빵을 굽던 직원 분은 얼굴이 늘 벌겋게 익어 있었고, 밀가루 포대를 옮겨오고 빵을 만들던 제빵사 분들의 팔과 등 근육들을 보며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구나 깨닫기도 했습니다.
이후 주말 알바로 홈플러스 식품 매장 한켠의 분식집 알바도 하고요(거기선 뜨거운 어묵 국물을 붓다가 손 하나를 담그기도 하고요.. 다행히 상처는 없지만 병원도 못 다녀오게 하는 환경이 너무 서럽기도 했지요). 그런 저런 일로 모은 돈으로, 대학 졸업을 앞두고 프랑스로 한 달간 배낭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알바비를 허튼 데다 못 쓰게 맡아준 엄마 덕분이었고요.
|
|
|
에세이 <봄, 시작하는 마음>(책폴 2024)에서 황효진 작가는 스무 살 이후로 해온 여러 일의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어차피 일을 해야 하는 한 그 과정에서 무엇을 견디거나 견디지 않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는 것. 일을 통해 이루거나 가장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 말하자면, ‘내가 일을 해서 직접 돈을 번다’는 간단명료한 문장 속에 얼마나 복잡한 사실이 숨어 있는지 이제는 안다.(p.113)”
창업하고 난 뒤에, 저에게 “늘 여유가 있어 보인다. 유유히에서 나오는 책들은 대표님을 닮아 있다”고 이야기해주신 분이 있습니다. 그래 보인다니 다행이고 기쁘고 고마웠습니다. 사실, 유유히를 지속가능하게 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월급을 받던 이전보다 수입은 많이 줄었습니다. 돈을 벌고 있다는 실감이 있어야 사업을 제대로 하는 것일 텐데, 2년 차 대표는 늘 고민하는 중입니다.
다만 세상을 알아갈수록 돈과 함께 좋은 걸 주진 않더라고요. 돈이 주어지는 만큼 마음이든 건강이든 무언가를 앗아갑니다. 돈이 없으면 대신 시간을 얻고, 내 맘대로 일의 속도를 제어할 자유를 얻습니다. 모든 건 자신의 선택의 문제죠. 모두가 바라는, 돈으로 시간의 자유를 얻는 건, 먼 미래의 일일 것 같고요, 기적이라 회자되는 일이겠지요. 그런 이루지도 못할 욕심을, 창업하고 나서는 가장 먼저 많이 비우게 되었습니다. 바란다면 매일을 꾸준하게, 오래오래 하고 싶습니다.
황효진 작가님의 에세이 마지막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저의 마음을 고스란히 적어둔 것 같은 부분으로 이번 레터를 마무리할게요.
|
|
|
“나에게 제일 중요한 건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최대한 좋은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고, 목표가 잘 이루어졌을 때 함께 기쁨을 충분히 누리고,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도 서로에게 위로와 응원을 자연스럽게 건네고 싶다. 맛있는 음식을 종종 나누어 먹고, 시시콜콜한 잡담과 실없는 농담을 나누고, 일 바깥의 즐거움과 고단함도 기꺼이 나누고 싶다. 일에서 진짜 어려운 건 돈 벌기보다 이런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 어려운 걸, 마지막 일을 할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해보고 싶다.(p.115~116)” |
|
|
❤️ 정밀아 <겨울끝> (2014)
몸살처럼 아팠던 이 겨울 끝에서 나지막이 불러보는 네 이름 낯설어 이제 나는 정말로 괜찮은 건지 가끔씩 소리 내 웃기도 한다
언 땅 위를 헤매던 외로운 걸음은 녹지 못해 한참을 시름거리다 이 겨울이 가기만을 기다렸다오 애타게도 기다렸다오
다시 새봄이 오면 따뜻한 봄볕 잔디에 이 마음 편히 뉘고 싶지만 아직도 바람이 차다
내일을 믿으려 하오 그러려 하오 가을 가고 겨울 지나 그다음엔 봄
다시 여름 태양 아래 그리워질까 이렇게도 시린 바람이 이렇게도 모진 겨울 끝.
|
|
|
한창 인디 음반 많이 듣던 시절에, 좋아하던 뮤지션 정밀아 님 노래를 오랜만에 꺼내 들어봅니다. 요즈음에 듣기 좋은 노래 같아서요.
다시 봄이라는 것, 이제 겨울 끝이라는 것을 믿어봅니다. 🌱 |
|
|
<기억을 먹는 아이> 출간 기념 북토크
지난 2월 29일, 북티크 서점에서 도대체 작가님과 독자님들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 오랫동안 도대체 작가님을 좋아해온 독자님들과 울다 웃다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멀리 전주에서 달려와준 독자님,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를 읽으며 웃음으로 불안을 달래며 힘든 시기를 잘 지나온 독자님,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함께 작가님의 팬이라고 외치는 자매 독자님들까지...!
❄️
책 속 <눈송이> 전문을 작가님과 함께 낭독하는 시간을 준비했었어요.
세상에 내려와 녹아 사라질 걸 알면서 내려올까,
하나 둘 셋,
힘껏 뛰어내리는 눈송이처럼
우리는 모두 고유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고,
작가님은 전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작가님이 읽어주시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토닥토닥 하는 위로를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죠.
함께해주신 독자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드려요!
|
|
|
아아! 부산에 계신 독자 여러분 주목해주세요~! :)
3월 30일 도대체 작가님과 에디터리가 부산으로 달려갑니다!
북토크에 오고 싶은 분들은
동네서점 아르케 인스타그램 @bookshop_arche 에 DM을 보내시거나
전화 010-4556-8284 로 신청하시면 됩니다.
|
|
|
밀리의 서재 <기억을 먹는 아이> 전자책 선출간
3월 12일까지, 전자책으로는 밀리의 서재에서 먼저 만나볼 수 있는 기회!
이런 분들에게 추천해요!
✅ 엉뚱하고 기묘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
✅ 신선한 컨셉과 유의미한 메시지
✅ 우울한 마음을 녹여주는 단편 소설집
먼저 읽어준 밀리의 서재 독자님들의 리뷰도 살짝 공유해봅니다.
✍️ 가볍게 읽으려다 초반부 이야기를 읽으며 이거 내 취향의 책이자나! 싶어 반갑고 기뻤다. 몽글몽글하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단편글들은 나에게 잔잔하면서도 진심이 담긴 위로를 주었다. 풍선에 매달린 남자가 높은 산 바위에서 한 말에 나도 같이 눈물이 차올랐다.
✍️ 단편 소설 모음집이었지만 캐릭터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라 각 스토리마다 캐릭터 찾는 재미가 있었다. 풍선에 묶여 두둥실 날아가는 남자는 말하는 인생은 각박한 사회를 살아가는 사회 구성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 도대체 작가님 책은 다 감동 한 스푼, 재미 한 스푼이 담겨 있다.
|
|
|
<기억을 먹는 아이> 기대평 이벤트 소식!!
팟캐스트 <잠 못 이룬 그대에게> 163번째 에피소드에서
도대체 작가님의 <기억을 먹는 아이> 중 네 작품을 읽어주셨습니다. :)
지혜 대표님의 낭독을 듣고 있노라면 이야기 속으로 푹 빠져들게 됩니다.
기대평 댓글을 남겨주시면
총 다섯 분을 뽑아
지혜의서재 굿즈 티 코스터(너무 예뻐요) 와
책 <기억을 먹는 아이> 1부를 보내드립니다.
기대평은 인스타그램 <기억을 먹는 아이> 게시물 댓글 혹은 잠 못 이룬 그대에게 홈페이지 게시판에 남겨주시면 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방송을 참고해주세요.
홈페이지 www.jihyebooks.com |
|
|
✨ 팟캐스트 <두둠칫 스테이션> on air!
EP.91 하늘에서 빗방울이 내려오면 너를 만나러 오는 줄 알아 '내일의 피크닉' (책폴 이혜재 대표) [커피타임]
성장 서사 좋아해요...?
그럼 판타지 로맨스는요...?
뭘 좋아할지 몰라 성장 + 판타지 + 로맨스 + 하이퍼리얼리즘 2024 대한민국을 다 넣었습니다.
두 편집자가 한눈에 반한 소설가 강석희 장편소설 '내일의 피크닉'을 주목해주세요. 더불어 3년 차 1인출판사가 매년 8종을 국내문학으로만 출간하고 있다...? '출판 머신'으로 불려도 될 이혜재 대표님과 함께 합니다!
|
|
|
답장 시스템이 바뀌었습니다.
페이지를 누르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게시판이 열려요. 보다 쉽게, 서로의 피드백을 함께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2024 새해부터 변경되었음을 알립니다. 위트보이와 에디터리의 답장도 그 밑에 답글로 달아둘게요. 이번 주 답장도 잘 부탁드려요! 😉 |
|
|
이번 주 유유히 레터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주 레터는 위트보이 님이 보내드릴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