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중독 증세를 보이는 엄마 밑에서, 동생 찰리의 실질적인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는 열세살 미아가 주인공인 이 소설은, 미아가 소설 속에서 읽고 있는 100년 전 조선에 살았던 가네코 후미코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자신의 시간들이 100% 싱크로율을 보입니다. 이 소설을 읽고 있는 저는 마치 두 생을 왔다갔다 하는 기분이 되어 마음을 졸이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을 펼쳐서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2시간 반 동안 푹 빠져 읽었는데요, 이런 독서도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가난과 불행을 들키고 싶지 않은 미아에게, 그 시절의 저의 모습도 겹쳐 보이기도 했어요.
제가 11살 때부터 21살까지 10년 정도 살았던 주공아파트에는 저희 집이 있는 2단지 외에 1, 3단지가 영구임대 아파트였어요. 학교에서 만나면 모두 같은 아이들이었는데, 주변 다른 아파트들에서는 항의가 제법 들어왔습니다. 학교를 구분하자는 이야기도 들렸고요(제발.. 이렇게 차별과 혐오를 가르치지 말아주세요 어른들이여...).
저는 저희 동 바로 앞에 있는 사회복지회관을 자주 들락거렸습니다. 그곳에는 카이스트 대학생들이 학습 봉사를 하는 공부방이 있었고,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놀아주는 사회복지사님들이 있었고, 시험 기간에는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독서실이 있었습니다. 일하느라 바쁜 부모님 대신 돌봐주는 어른들이 그곳에는 많았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마음 놓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있어,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심심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단지 구분 없이 친한 친구들과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더불어 제가 처한 환경이 그렇게 비관할 것도 아니라고, 어떤 상황에서도 더 나은 날들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이유 모를 긍정이 생긴 것 같아요.
친구들을 봐도 그랬어요.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 중에는 집이 몇 평이든, 부모님의 직업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힘듦을 꾸역꾸역 견뎌내고 있었어요. 그럼에도 집에서의 상처가 겉으로 불거져나와 폭력 사건도 일으키고 가출도 하고 여러 말썽들도 많아 신임 선생님도 남몰래 교실에서 눈물 짓기도 했지만, 그런 날들을 두루 겪으면서 커온 저의 지난 날들이 제 마음을 더 단단하게 붙들어준 것 같아요.
상처는 아물고 우리는 누군가들의 도움으로 벗어날 수 있다고, 도움을 부끄러워하지 말자고요. 끝이 없어 보여도 언젠가 끝나더라는 신뢰가 생겼죠. 그리고 지금은 저보다 힘든 사람들을 돌아보는 사람이 되었죠.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부모님뿐 아니라 10대 시절에 만난 좋은 어른들의 도움이 분명 컸으리라 생각합니다.
소설 속 미아가 굶고 다니는 걸 알게 된 후, 어린 시절 친구였으나 지금은 소원해진 이비가 1파운드로 저녁 뷔페를 먹을 수 있는 카페로 오라고 쪽지를 건넵니다. 가난에서 헤어나오기 힘든, 미아와 이비가 사는 공영단지 사람들이나 자신의 사상을 위해 가난한 생활을 택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간이죠. 식사를 해결할 뿐 아니라 공동체적 삶을 모색하고 취약계층 지원을 도모하는 따뜻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미아는 동생 찰리와 모처럼 배불리 식사를 하고, 엄마를 위한 음식도 챙길 수 있어요.
엄마의 상태에 휘둘리고 모든 것이 절망적이어도 미아는 지켜야 할 동생 찰리가 있어서 힘을 냅니다. 미아의 곁에는 마음을 나눠주는 친구들이 모여 들고요. 마음이 울컥하면서도 미아를, 세상 모든 여자아이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장까지 순식간에 읽었습니다. 겨울밤 독서로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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