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목 시인의 하노이 '여행기'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하노이에서 하고 있는 것이 별것 없습니다. 그럼에도 책을 읽고 책장을 덮고 나면 이게 여행이지, 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매일 쓸 수 있을까? 죽지 않고 매일 살 수 있을까?
머릿속에 두 가지 질문을 품고 있는 사람.
한국에서는 식욕도, 성욕도 잃어버렸는데 하노이에서는 식욕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갑니다, 하노이로.
걷다가 배가 고프면 내가 좋아하는 식당에 들어가 쌀국수를 먹었다. 속옷까지 흠뻑 젖도록 땀을 뻘뻘 흘리며 국수를 먹다보면 세상 근심은 바닥을 드러내는 그릇처럼 깨끗이 사라진다. 잠시 밥을 먹으며 생각해보자는 생각 따위는 가당치 않다.(p.82)
시간이 지날수록 하노이의 '무엇-없음'에 나는 매료되었다.
파리가 날아다니는 노점에 혼자 앉아 하염없이 커피를 마시는 것.
그냥 아무데로나 걷는 것.
감탄할 풍경보다는 가지 말아야 할 곳을 분별하는 것.
먼지가 쌓이고 곰팡내가 나는 기념품을 구경하는 것.
사고 싶은 것이 없어 그냥 나오는 것.
빈손으로 걷는 것.
길바닥에 맨발로 앉아 있는 사람을 보는 것.
가까이 다가가 단숨에 서터를 누르는 것.
눈을 마주치고 함께 웃는 것. (p.103-104)
하노이에서 시인은 아직 자신 안에 차 있는 분노와 슬픔을 바라봅니다. 더 이상 싸우지 않고 분노하지 않고 살의에 휩싸이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이,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흠뻑 젖는 하노이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 없이 살아 있는 감각을 깨웁니다. 도저히 살 수 없다는 절망감, 이대로 계속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위기감, 도망치고 싶을 때 도망치는 것도 용기이기 때문에, 우리는 떠나는 거겠죠. 그렇게 시인의 여행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됩니다.
고통은 어째서 저절로 물러나지 않을까. 이렇게 애를 써야만 저만치 물러서서 나로부터 작별을 고하는 걸까. 힘든 일들이 끝나면 그걸로 끝이면 안 되는 거야? 꼭 그것과 내가 분리될 수 있도록 어떤 수고로움이든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인간은 참 이상하기도 하다. 이렇게 복잡하게 지어진 생물이라니. 나는 불평을 하면서도 난빈에 두고 온 나의 과거에 또 찔끔 눈물이 났다. 난빈은 아름다웠고, 아름다운 난빈은 나의 고통을 흔쾌히 받아주었다. 여기에 두고 가면 돼. 넓은 땅이 내게 말해주었다. (p. 127)
나는 내가 본 것을 다시 보기 위하여 하노이로 떠났다.
살면서 내가 잘한 일이 있다면 불행한 내가 본 것을
행복한 내가 보기 위해 몸을 움직여 멀리 떠난 것이다. (p.142)
매일 출퇴근을 반복하며 나도 모르게 시들어가고 있을 때, 저 멀리 어딘가로 비행기표를 끊고, 큰돈을 들여 여행을 다녀왔었습니다. 비로소 숨이 트이고 자유롭다는 감각을 맘껏 느끼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생각했죠.
'와, 행복은 저 멀리에 있는 거였어. 엄청 비싸.'
이렇게 다녀오고 나면 그만큼 내가 감당하고 있어야 할 이곳의 고통이 하찮아보였습니다. 그럼 결단을 내릴 수 있었어요. 여기서 벗어나 나를 불행하지 않게 하는 곳으로 가자.
내가 움직여서 나를 구원할 수 있는 행위, 그게 여행이고 그게 삶이 아닐까. 그렇게 버리고 떠나도 된다고 알려주는 짧은 환기, 가을에는 또 우리 어디로 떠나볼까요?
어디든 갈 수 있다,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주시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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