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사이 세찬 비가 내리고, 서늘하고 고요한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여름의 아침에는 비를 가득 머금었던 초록잎의 산뜻한 기운을 흠뻑 마시고 싶어집니다. 얼른 레터 글을 쓰고 잠시 오전 산책을 즐기러 나가도 좋겠어요. (출근하러, 등교하러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 제법 한가한 걸음으로 걷는 사람이 되는 것도 좋죠 ㅎㅎ)
12월에 유유히 출판사를 등록하고 난 뒤에, 한동안 새로이 만들고 싶은 책이 없어서 새삼 스스로에게 놀라기도 했습니다. 상반기에 출간한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행을 책으로 만들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기획하게 된 『여행의 장면』, 그리고 하반기에 출간을 계획하고 있는 고수리 작가님의 책 외에 말이에요.
아무리 유튜브를 보고('지구마불 세계여행' 덕분에 원지 님을 발견한 건 너무 기쁘지만요. 기째 기째!) 서점 매대 앞을 기웃거려보아도 더 궁금해지는 사람이 없었어요. 내심 멍한 머릿속과 내가 지쳤나, 만들고 싶은 책이 없다니 큰일났다… 하는 난감함,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유유히의 출간 목록을 채워야 한다는 초조함에 시달렸어요. 이게 바로 기획 업무가 어려운 점이지요. 창조적인 업무임에도 주어진 시간 안에서 해내야 하는 것. 평소에 관심사를 넓게 갖고 있지 않으면 어떤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
일부러 한가한 시간을 만들고 다양한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분명 나도 모르게 같은 패턴과 회로로 세상을 보고 있을 테니, 다른 사람들은 요즘 무엇이 재밌는지 궁금했어요. 트위터 피드에 어떤 이야기들이 흘러가는지 가만히 지켜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건져올릴 만한 이야기를 찾기는 쉽지 않았어요.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흘러, 어느 날 아침 지금의 제게 필요한 키워드들이 떠올랐습니다(드디어...!). 아이디어는 역시, 번뜩 떠올리는 걸 생각에 꼬리에 꼬리를 물어 집요하게 잡아야 하는 거죠. 저에게 흥미로운 이야기의 뿌리는 이미 제가 읽은 책들 사이에 숨어 있더라고요(읽자. 부지런히 읽자. 더 읽자). 더불어 박씨를 물어다준 까치처럼, 저를 떠올리고 작가님을 소개해주신 고마운 은인도 옆에 계셨어요. (레터 보고 계시지요? 이 자리를 빌려 고맙습니다, 인사 전해요)
#지속가능한삶 #대세말고대안 #여기가아닌곳에서깨달은것들
위의 키워드와 꼭 맞는 분들에게 연락을 드렸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무엇이든 유유히에서 함께해보면 좋겠습니다 라고 메일을 썼고, 어떤 분에게는 그 원고 저에게 주세요 라고 연락을 드렸고, 어떤 분에게는 한번 뵈어요 라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6월 말인 지난주에, 모두에게 긍정의 화답이 도착했습니다. 이런 순간마다 제가 얼마나 기쁜지, 짐작이 가시려나요?
하얀 도화지 같은 유유히는 수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는 만큼 그 위에 무엇을 그려야 할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막막했어요. 결국은 제 마음이 향하는 이야기는 명확하게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저라는 사람이 생긴 모양대로요. 이렇게 있는 그대로 모양을 보여줘도 될까, 걱정하기보다는 저의 방식대로 일단 시작된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펼쳐 보이는 유유히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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