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일요일 저녁, 오랜 지인을 만나고 왔습니다. 우리는 2015년 한창 크래프트 맥주 관련 가게를 준비하고 있을 때 한 맥주 아카데미에서 만났어요. 이 분은 인상도 서글서글하시고 다정다감한 말투에 첫인상부터 아주 좋았습니다.
당시 이미 브루어로 일을 하고 계셨던 터라, 맥주를 공부하면서 궁금한 건 모두 이 분께 물어보았죠. 궁금한 건 많고 물어볼 데는 없고, 열정만 있던 저에게 많은 걸 알려주셨어요. 지금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저였다면 그렇게 모든 질문에 친절히 답을 해주진 못할 것 같아요. 아마도 도망가지 않았을까요 ㅋㅋ
이 분과 얽힌 선명하게 기억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맥주의 기준을 180도 바꾸게 만들었던 그 얘기를 말씀드릴게요.
그 당시 저는 매주 시음회를 열거나 참석해서 크래프트 맥주를 시음했습니다. 한 번에 적으면 30종, 많으면 50종 이상 시음했습니다. 나라별로, 지역별로, 브루어리 별로, 혹은 연도별로 맛과 향이 모두 다른 크래프트 맥주를 시음했습니다.(열정!열정!열정!)
어느 순간부터 저는 좀 마셔봤다고 이건 이래서 별로고, 저건 저래서 별로다. 품평을 하기 시작했죠. 파는 사람 입장에서 맥주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먼저다라는 생각을 했기에 제 기준에 맞지 않으면 가차 없이 까(?)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 재수가 없었습니다. ‘평가’라기보다 평’까’를 한 거죠.
그러다 그 브루어님과 시음회를 했습니다. 전 당연히 전문가다운 날카로운 평가(?)를 기대했죠. 근데 제 예상과 다르게 그분은 그날 마신 모든 맥주가 좋다고 했습니다. 이 맥주는 이런 매력이 있고, 저 맥주는 저런 매력이 있고, 각각의 맥주가 가진 고유한 특징과 매력을 말씀해 주시더군요. 그전에 만나봤던 다른 전문가들과는 다르게 말씀하셨습니다. 속으로 너무 방어적으로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싶었죠. 취기가 올라서인지 바로 물어봤습니다. 그럼 브루어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맥주는 뭔가요?
“좋은 맥주는 마시는 사람이 맛있게 마시는 맥주가 가장 좋은 맥주라고 생각합니다. 흔하지 않은 재료가 들어갔다거나 유명한 곳에서 만든 맥주보다 자신의 취향에 맞게, 맛있게 즐기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날 맥주를 너무 마셨던 건지, 내 생각이 부끄러웠던 건지 모르겠지만, 이 말을 듣고 머릿속에서 띵~ 소리가 났습니다. 이날부터 제가 생각하는 좋은 맥주의 기준이 완전히 바뀌어버렸습니다.
맛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단순히 맥주의 스펙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그 맥주의 매력을 발견하고 스토리를 소개하는데 노력하자. 손님들의 취향에 맞는 맥주를 추천해드리자. 이렇게 생각을 바꿔 가게를 운영해나갔습니다. 다행히 이런 부분을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위트위트를 하는 동안 정말 즐겁게 일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