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산책을 좋아합니다. 덧붙여 말하면 산책하면서 공상하는 걸 더 좋아하는데요. 얼마 전 산책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기분을 저장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게임하다 저장한 파일을 불러오듯이, 그때 그 상황과 기분을 언제든 원할 때 다시 느끼면 정말 좋을 것 같았습니다.
예전에 핀터레스트에서 본 한 이미지가 생각났습니다. 게시판에 붙이는 전단지에 연락처 대신 감정을 뜻하는 단어가 쓰여 있었습니다. 이 이미지를 이번에 출간되는 저희 책 <여행의 장면> 버전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여행의 장면>은 10명의 작가가 여행에 대한 주제로 각자의 장면을 얘기하는데요. 10개의 글을 읽고 나면 10가지 기분이 듭니다. 작가님들의 색채만큼 다양한 기분을 불러오는 이야기들이랄까요. 이 기분들을 훗날 필요한 순간이 왔을 때, 다시 불러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고수리 작가님이 쓴 <돌아보면 반딧불이 같은 추억일 거야> 편을 읽고 마음 한구석에 장작불을 붙인 듯 뭉근하게 따뜻해져요. 시간이 흘러, 어느 날 마음이 지치고 힘든 날에 이 기분을 다시 꺼낼 수 있다면,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생각이 나면 바로 해야 하는 성격이라, 집에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를 켜서 뚝딱뚝딱 만들어봤습니다. <여행의 장면>을 읽고 느꼈던 기분을 앞에 적고, 그 기분과 맞는 작가님과 챕터 속 문장을 뒷장에 넣었습니다. 우중충한 마음을 펴줄 ‘화창한 기분‘은 김신지 작가님의 <잠시 다른 인생을 사는 기분> 속 문장을 적었습니다.
갑갑한 마음을 풀고 싶을 땐 서한나 작가님의 <카페 사이공> 속 문장을, 다 접고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는 봉현 작가님의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문장을 넣어두었습니다. 작업실 벽에 붙여 놓으니 뭔가 그럴싸합니다.
AI 시대다 자율주행의 시대가 온다 뭐라 하지만 아직까지 기분을 저장할 수 있는 장치는 없잖아요. 저는 A4 종이 한 장으로 10가지 기분들을 저장해두었습니다ㅋㅋㅋ 자취하는 시절에 찬장에 라면과 참치캔, 레토르트 카레를 가득 채워두면 마음이 풍족하고 든든했는데 꼭 그런 마음이네요.
드디어 다음 주 <여행의 장면>이 출간됩니다(온라인 서점에서는 6월 8일부터 주문이 가능할 거예요). 에디터리 님이 이 책을 작업하는 내내 무척 즐거워하던 게 생각나네요. 만드는 사람이 즐거우면 결과물이 좋다는 걸 이번에도 느꼈습니다. 여행의 계절에 정말 잘 어울리는 책이 탄생했답니다.
제가 느꼈던 10개의 기분을 여러분도 함께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딱 일주일만 기다려주세요.
<여행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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