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들어준다는 건 그 말을 대신 정리해주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충분히 기다리는 일이다.
아이들이 자기 말의 모양을 스스로 찾도록 기다려주는 일이다.
내 머리통에 납작하게 붙어 있어 있는 한 쌍의 귀가 불어나고 불어나 열 쌍의 귀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작은 말 안에 든 아이들의 자랑, 서운함, 기다림, 흥분을 들어주고 싶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거나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꺼내도 엉뚱하게 여기지 않도록 조심하고 싶다.
말과 함께 아이들의 표정과 망설임과 침묵을 읽고 싶다.
별뜻 없이 하는 말이라 해도 그 안에 든 작디작은 슬픔까지 알아주고 싶다.
말의 겉이 아니라 그 안쪽에 머무는 마음까지.
- 남지은 <어린이의 곁이면 되었다>
안녕하세요 에디터리입니다.
남지은 시인의 첫 산문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조금 설렜습니다. 시인에 대해 잘 모르면서요. 틀림없이 좋은 분이다 하는 제멋대로의 확신으로요.
남지은 시인을 알게 된 건, <쓰는 사람의 문장 필사>를 만들면서 고수리 작가님이 골라준 문장 덕분이었어요. 문학동네 시인선 100 기념 티저 시집 속에 짧게 실린 남지은 시인의 산문 <그리운 미래> 속 문장이었지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기분 좋은 소식이 있다’는 문장이 떠올랐다. 미래의 일이 그립기도 하고 받은 적 없는 행복이 미리 만져지기라도 하는 걸까. 어린이 병원에서 일할 때 한 아이와 자주 창밖을 내다보곤 했다. 비가 오지 않는 날도 장화를 신고 다니는 친구였다. 우린 창가에 앉아 기차가 오가는 걸 바라보거나 비행기가 지날 때를 기다렸다. 기다리면 기차와 비행기는 어김없이 지나갔고 아이는 기뻐했다.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이라 여겼던 나도 기차가 달리면, 비행기가 날면 어느새 기쁨을 느끼게 됐다. 무엇이 사람을 기쁘게 할까. 지루한 기다림이 아니라 간절한 기다림이라야 할까. 그렇다면 시 쓰는 나의 기쁨은 어디만치 달아났을까. 당도하지 않은 일을 그리며 간절하게 쓰고, 기쁘고 싶다. 달그락거리는 장화를 신고 복도를 걷던 그 친구처럼.
- 남지은 산문 「그리운 미래」 중에서
지난 달부터 5개월간, 시애틀에 살고 있는 동생과 조카 둘이 대전 부모님 댁에 머물고 있습니다. 여섯 살 지호와 네 살 지아를 보려고 이번 달에 벌써 주말마다 두 번 다녀왔는데요. 이번 주에 또 기어코 시간을 내서 내려갑니다.
...... 내가 조카 바보라니... ?!
어리둥절하지만 눈앞에 자꾸 아른거리는 귀여운 조카들 얼굴에 번번이 졌습니다. 날이 좋은 5월이라 그런지 기차표 구하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수시로 살피고 예매를 해둡니다. 서울역 출발보다 용산-서대전으로 가기 시작했습니다(대전 출신으로서 서대전역과 대전역은 큰 차이가 없다는 꿀팁을 전합니다 ㅎㅎ 물론 대전역에는 성심당이 있고 서대전역에는 없다는 건 큰 차이지만요...).
어린이들과 놀아주는 건 '정신 없음'을 몸소 체험하게 됩니다. 이것저것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놀고 재잘대고 웃다가 넘어지거나 부딪히고 울다가 다시 놀다가 서로 붙잡으려 뛰어다니다가 누구 하나 힘을 쓰기 시작하고 싸우고 울고 다시 일어나 웃고 뛰고 달려갔다 달려옵니다. 주말에는 주로 꼼짝없이 누워 하루를 충전하는 시간을 보내던 저에게, 아침 7시면 일어나 이모가 깼는지 조심스레 문을 살짝 열어보는 지호의 얼굴에 벌떡 몸을 일으킵니다. 8시면 평일과 다름없이 아침을 먹고 9시면 어디든 나가야 하는 거죠.
놀이터를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에.
이모가 어린이날 선물로 사준 각자의 가방을 안고 있습니다.
사실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이모인데다 한국에 와도 몇 번 얼굴 못 보고 가는 조카들인데요. 아이들은 '이모'라는 존재만으로 저를 열심히 좋아해줍니다. 주말을 보내려 대전 집에 도착하면 반가움과 쑥스러움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약간의 주춤거리는 시간 5초 이후에 신나게 뛰어와 품에 안기는 지호. 처음엔 거리를 두다가 어느 순간 냅다 무릎 위에 앉아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지아. 너무 사랑스러운 존재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에게 골고루 사랑을 나눠주니까, 부모님만 있던 고요한 집이 북적북적 활기로 가득합니다.
이 두 꼬마들과 제가 좋아하는 서점 한쪽가게와 버찌책방도 다녀왔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열려 있는 공간은 참으로 고맙습니다.
이모 손 잡고 멀리 멀리 씩씩하게 걸어서
도착한 대전 책방 한쪽가게
버찌책방 테이블에 마주 앉아
각자의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고 있는 중
아이들과 놀다 보니 주말은 오전 7시- 오후 8시로 규칙적으로 돌아갑니다. 더 놀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오늘 읽을 책 2권씩만 골라서 방으로 들어와"라는 엄마의 말에 각자 책을 안고 졸린 눈으로 들어가는 지호, 지아와 인사를 나누면 저도 쓰러지듯 눕고 맙니다.
발산하는 에너지를 감당하고 있자니 두 아이의 엄마인 동생이 너무 커보여요. 함께 있는 동안만이라도 잠시 숨 돌릴 틈이 있기를 바라며 이모가 좀더 열심히 조카들과 놀아주기로 다짐합니다. 그 에너지를 받아서 저도 한 주 열심히 기운 내서 살고 있다고, 레터를 빌어 고마운 마음도 전하고요. 😊
이번 주 토요일은 지호 유치원 운동회날!
저의 어릴 적 유치원 운동회 이후로 거의 40년 만에 가는 거니까 즐거운 추억 많이 담아주고 올게요.
마음껏 뛰어 노는 어린이처럼 씩씩한 기운을 전해드리며, 오늘 레터 마쳐요!
망원동 젤라또 맛집 <당도>
젤라또 좋아해요..? ㅎㅎ 요즘 빠져 있는 맛입니다.
커피를 가급적 하루에 한 잔으로 줄이면서, 저녁 약속이 있을 때 식사를 마치고 카페보다 젤라또를 종종 찾게 되었어요.
망원동에 있는 <당도>는 꽤 오래된 가게입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 방문했고 그 뒤로 몇 년을 간 적 없다가 모처럼 만난 친구들과 이번에 신나는 기분으로 찾았지요.
컵과 콘에 두 가지 맛 + 맛보기(한 스푼) 으로 총 3가지 맛을 고를 수 있는 재미!
저는 쌀과 설향딸기, 그리고 맛보기로 바질우유를 먹었는데 특히 바질우유가 제 입맛에 딱이어서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한입 먹고 다들 행복해하는 얼굴을 보니 흐뭇해진 것도 덤이고요. 거의 문 닫을 시간이라 텐션이 떨어질 만도 한데 기운찬 목소리로 아이스크림을 담아주신 사장님도 인상적이었습니다. :)
윤이나 <신이 떠나도>가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에서 선정하는 청소년 교양도서 '우수선정도서'로 뽑혔답니다! 총 1,603종의 신청도서 중 우수선정도서가 60종, 그중 청소년 문화예술 분야 13종 중 하나로요. :)
처음 미팅을 할 때인 작년 1월 초, 윤이나 작가님은 무당 현재림의 딸 현미래를 주인공으로 한 청소년 소설로 써볼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요. 딸의 시점에서 그리려다가 원래의 구상대로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추천을 받게 되다니.. 혼자 감격이 두 배로 몰려왔습니다. ㅎㅎ
또 상반기 오디오북 제작 지원도서로도 선정되어서 더 널리 독자들을 만날 준비도 되었습니다. 많은 사랑을 먼저 전해주신 독자님들께 압도적 감사를 드립니다.
1인출판사이면서 어마무시한 출간 속도를 지키고 있는 책폴 이혜재 대표님이 오랜만에 커피타임을 찾아왔어요. 남유하 작가님의 신작 청소년SF 장편소설 '부디 안녕하기를'과 함께요!
먼 미래, 지구와 꼭 닮은 어느 행성에 열일곱 살을 맞이한 소로. 그리고 소로에게 깃든 지구인 조영인의 영혼. 깃든 이와 함께, 자신에게 내려진 불길한 운명에 맞서는 소로의 모험. 그리고 청소년 SF소설을 만들면서 계속해서 하는 고민들. 어떻게 하면 끝까지 읽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