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서 가장 많이 듣고 있는 말이 '주식'과 'AI' 였던 거 같아요.
그리고 업무에서 AI를 많이 쓰고 있는지 작가님이나 편집자 동료를 만날 때 서로 묻고, 무엇이 도움이 많이 되는지 참고도 하고요. 괜히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가, '어 이러다 나만 뭐가 뭔지 모르는 거 아니야' 하는 조바심에 챗GPT를 잠시 써보았다가 지금은 제미나이를 구글 요금제로 묶어서 쓰고 있습니다.
저의 활용은 주로 외국어 사용, 외서 간략 검토(후에 번역가님께 정식 검토 요청을 드렸고요), 영어 문서(해외 계약건 계약서) 검토 등을 쓰거나 비즈니스 이메일을 쓸 때 검수를 받는 정도입니다. 아직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쓴 적은 없고요.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몰라도 되나 하는 불안감이 계속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태 없이도 잘 해왔는데 말이죠), 보도자료를 써준다는 얘기에 솔깃했다가 제미나이 창만 열어두고 옆에서 한글파일로 싹 작성한 이후에 "아차 AI 활용을 안 했군" 하며 어쩐지 손해보는 기분이 들어서 보도자료 한 귀퉁이에 이렇게 적고 싶었습니다.
"이 보도자료는 수제(手製) 보도자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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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트윗에서 본 기사.
AI와 함께 쓴 글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의미 없다, 알 수도 없다는 것에 두려움이 큰데요. (이 사실이 우리 업계를 어떻게 바꿀까요)
'인간 저작' 로고 사용이 오히려 필요하겠구나 싶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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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보자마자 아 이거였네 내 마음! 하고 박수를 짝 쳤습니다.
그러니까 AI와 괜히 거리를 두고 싶었던 마음은 복잡했습니다. 같은 시간에 일을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그러니까 '직원 한 명을 더 둔 것처럼 일할 수 있다는데 왜 안 해? 알려고 하지 않는 건 시대에 뒤쳐질 뿐이라니까?' 하는 채근하는 메아리가 제 귓가에 계속 울려 퍼졌습니다. 문제는 지금까지 없이도 잘 해왔으니까... 가 좋은 핑계가 되어주었습니다.
<AI블루>는 딱 1년 전에 나온 책입니다. 개발자 조경숙, AI 연구자 한지윤님이 공동 저자로 참여한 이 책은 지금 제가 겪고 있는 혼란의 마음을 먼저 겪은 테크 업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모두가 AI를 쓸 필요가 없는데도 시대에 발 맞춰야 한다는 강박에 어떻게든 사용해야 할 것 같은 마음, 초조함이 있다면 그 마음이야말로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자고요.
AI를 멀리하고 싶은 내 마음을 한번 살펴봅니다.
첫째, 생각을 외주 주고 싶지 않다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평소 관심사로 저장해두었다가 레이더망에 무언가 보이면 그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나의 생각을 적확한 언어로 글을 쓰는 일들이 고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만큼 기쁘고 성취감이 큰 일이었으니까요. 지금까지 20년간 쌓아온 노하우와 몸에 체득한 기술을 AI에게 자꾸 의지하다 보면 잃어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컸어요.
그런데 저도 늙고 있고 '녹슬어' 갑니다. 감도 떨어질까 뭘 놓쳤을까 애써 보는 게 늘어났고요. 그런 저를 도와줄 수 있는 기술이라니 어쩐지 무서우면서도 그 정체를 들여다보고 싶어져요. 생각이 나지 않는 걸 빠르게 찾아준다니, 곁에 두고 있고 싶기도 합니다.
스마트폰이 생활화되면서 우리는 헤매는 시간을 줄이게 되었죠. 헤매는 시간이 없다는 건 실패의 확률이 줄어든 걸 말하고요. 실패를 하지 않는다는 건 실패가 그만큼 낯선 경험이 된다는 것이고, 그래서 과거보다 지금의 사람들이 작은 실패에도 크게 좌절한다고 해요. 우리가 이렇게 사회의 변화와 함께 잃어버리는 것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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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말 그대로 '최신' 개발 도구를 사용해야 할 때가 있었는데, 이 개발 도구의 코드 문법이 정말이지 독특했다. (..) 그래서였는지 챗GPT도 이 개발 도구의 사용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 한시간 가까이 챗GPT, 클로드 등과 싸움한 끝에 결국 나는 모든 AI 서비스를 껐다. 그리고 개발 도구의 개발자 문서 웹페이지에 접속해 처음부터 끝까지 가이드를 정독하기 시작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새로운 기술을 공부할 땐 늘 이렇게 하곤 했지만, 이번엔 어딘가 낯설고 새로웠다. 내가 구독하는 AI 서비스들에게 '이것들아, 내가 가이드를 읽어야겠어? 직접 공부하게 만들 거야?'라며 툴툴거렸지만, 오랜만에 개발 문서를 직접 읽으며 하나하나 문법을 익혀가는 과정은 의외로 즐거웠다. (..)
동시에 불현듯 떠오른 것이 하나 있었다. (...) 지금의 학습 경험을 조금씩 상실해나가는 것이 더 큰 위험이 아닐까. 기존에도 많은 미디어에서 AI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멈추게 될지 모른다고 강조하긴 했다. 그러나 그게 나를 향한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미래의 누군가가 겪게 될 이야기 정도로만 여겼다. 그러나 그건 이미 지금 나에게 닥친 문제였다.
같은 책, <공유지가 사라진 개발자들의 비극>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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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빨라도 너무 빨리 사회가 변하는 게 싫다
어쩔 수 없는 나이 든 사람의 말일까요? ㅎㅎ 왜 아무 생각이나 판단 없이 정부부터 팔을 걷어붙이고 모든 지원 예산을 'AI' 키워드에 쏟아붓고 있는 걸까요? 속도와 효율성, 누구나 이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변하는 사회를 원하는 걸까요? <AI 블루>에서는 AI를 자본이 이끌고 있기에 속도 조절을 더 하기 어렵다고 밝힙니다. 투자 대비 빠른 이윤을 걷어가야 하기 때문이죠. 내 정보가 데이터로 손쉽게 바뀌는 것도 잠깐의 허들일 뿐이지 사주부터 인생 고민까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어가죠. AI가 무엇을 대체하고 있는 것인지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로요.
셋째, 일단 '완성'을 목표로 두는 삶이 아니다
창작자에게는 소설이나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습작하는 시간과 몰두하는 시간, 쓰기와 그리기라는 행위와 과정도 창작자에게는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글이 완성되고 그림을 추출하고, 영상을 만들어 세상에 빨리 많이 내놓는 것만이 목표인 것처럼 세상은 돌아갑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더 나아가서는 '산다live'의 의미를 점점 더 잃어버릴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책 제목처럼 '경험'의 실종, 나아가 말 그대로 신체로 감지하는 '감각'의 실종으로 인간은 점점 더 비인간화가 진행되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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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원래 스쿼트는 1회에서 17회까지는 그럭저럭 할 만하고 그 다음의 3회가 죽을 만큼 힘들다. 여기서 1회에서 17회를 누군가가 대신 해준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둘째, 그렇다고 해서 1회에서 17회를 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왜냐면 1회에서 17회까지를 해야 힘이 쭉 빠지고 그 다음부터 근육이 찢어지는 경험을 하고 거기서 그 너머를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1회부터 17회를 통해 자신에게서 질문과 한계를 끌어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18회 이후'만' 할 수는 없다.
셋째, 마지막으로 이 모든 건 생산성의 문제가 아니라 주체의 집념과 이동/ 성장의 문제라는 것이다.
- 김지원 <일에 마음 없는 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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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모든 고민들이 아직 AI를 충분히 써보지 않은 사람의 한계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영향력과 침투력이 어느 다른 기술보다도 큰 AI 앞에서 자꾸만 주저하게 되는 마음을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오늘 레터는 여기까지입니다.
이 글을 읽은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지 궁금하네요.
짧은 답장이라도 남겨주시면 감사히 읽을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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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 A / B]는 하나의 키워드를 정하고
에디터리와 위트보이의 시선으로 각자 글을 씁니다.
다음 주에는 위트보이의 [SIDE B]가 발행됩니다.
비정기적으로 찾아올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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