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그저 도구일 뿐이며,
사용 여부는 각자 선택하면 되고,
사용하건 사용하지 않건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를 지켜나가면 된다’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을 본다.
그들의 순진한 전망은 틀렸다.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변하고 뒤바뀐다.
장강명 <먼저 온 미래>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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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묘한 촉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가끔 벼락처럼 “지금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별다른 근거는 없는데, 그 느낌이 오면 마치 부침개 뒤집듯 삶의 방향을 확 뒤집어버립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군대에서 매일 담배를 피웠는데, 제대하는 날 한번에 끊었습니다. 언젠가 끊어야겠단 마음은 있었지만 그날 갑자기 “지금이네?” 하고 느낌이 온 거죠. 그 뒤로 단 한 번도 피우지 않았습니다.
위트위트 가게를 할 때도 매출이 떨어지긴 했지만 어찌어찌 운영을 하면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근데 어느 순간 그 느낌이 왔고, 2019년 12월에 폐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2020년 2월 코로나가 시작되었죠.
돌이켜보면, 이런 선택들은 번갯불처럼 갑자기 내린 결심이기보단 오랫동안 쌓였던 감정과 생각들이 임계점을 지나 한순간 “지금이야” 하고 터져나온 결과였던 것 같습니다. 그 느낌이 왔을 때 저는 단호하게 결정을 내렸고, 그 결과를 받아들였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대부분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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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그 ‘빠박’한 느낌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주변이 순간 하얘지고 머리가 멍해지는 바로 그 느낌. 그리고 문장 하나가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AI를 배워야 한다”
올해 초부터 챗GPT를 써보긴 했지만 손이 잘 가지 않았습니다. 딱히 묻고 싶은 것도 없었고, 결과물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누리끼리한 이미지와 숏폼을 보면 이유 모를 거부감이 들었고, 딥페이크 뉴스도 한몫했습니다.
“내가 만든 건가? 아니면 그냥 프롬프트 조합이 만든 디지털 덩어리인가?”
그 경계가 흐릿해지는 느낌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늘 이런 생각만 반복했습니다.
“굳이 지금 배워야 하나?” “내 일에 큰 도움이 될까?” “그 시간에 그냥 책 한 권 더 파는 게 낫지 않을까?”
이렇게 미루고 미루다 보니, 어느새 ‘나중에’가 ‘아예 안 함’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예고 없이 그 느낌이 찾아온 거죠. 이상하게 이번엔 미루고 싶지 않았고 바로 시작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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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시작해보니… 아, 이게 생각보다 어렵더군요. 모르는 용어 투성이었고, 익숙하지 않은 인터페이스, 무엇보다 일을 바라보는 사고 방식 자체를 바꿔야 했습니다.
예전에 엄마가 엑셀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게 물어보셨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아우, 왜 이렇게 어렵니. 몇 번을 들어도 모르겠네…”
그때 느껴졌던 엄마의 복잡미묘한 표정이 이제 제 표정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걸 배운다는 게 즐거움이 아니라 막막함이 된다는 걸 지금은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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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잘하려고’ 하기보단 ‘익숙해지는 과정’ 그 자체를 즐겨보기로 했습니다. 유튜브를 보며 따라 하고, 검색하며 시도해보고, 조금씩 기능을 익히다 보니 이제는 챗GPT와 제미나이는 제법 편하게 씁니다. 최근엔 미드저니도 시작했는데 프롬프트 한 줄에 따라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지는 과정이 꽤 재미있습니다. 제가 머릿속에 그리는 ‘근사치’를 찾아가는 게임 같달까요.
AI를 배우는 저의 목적은 단순합니다.
“DO MORE”
2인 출판사에서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AI를 통해 조금이라도 넓혀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확보된 시간은 새로운 질문을 하고, 새로운 기획을 만들고, 새로운 책을 고민하는 데 쓰고 싶습니다. 이제 기초는 어느 정도 익혔고, 요즘은 출판업에 어떤 식으로 접목할 수 있을지 계속 실험 중입니다. 나중에 괜찮은 방법을 찾게 된다면 관심 있는 분들과도 경험을 나눠보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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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설계 과제가 막혀 머리를 쥐어짜며 모니터를 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야식을 먹으러 온 선배가 “뭐 때문에 그래?” 하고 묻더니 제가 넣고 싶은 프로그램과 동선이 도저히 맞지 않는다고 하자 모니터를 잠시 들여다보다가 벽 한가운데에 툭, 문을 하나를 넣었습니다.
“여기다 문을 넣으면 되겠다.”
그 한 줄로 모든 고민이 해결됐습니다.
“아니, 왜 나는 그걸 못 떠올렸지?” 라고 말하자 선배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동선이 뭐 별건가. 벽을 열면 그게 바로 문이지”
20년도 더 된 기억인데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에피소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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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유유히의 앞날이 막막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주변이 다 벽처럼 보이는 거죠. 그럴 때마다 그 선배의 말을 떠올리며 용기를 냅니다.
벽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 조금 덜 용기 낸 채 닫아두었던 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용기를 내서 벽처럼 느껴지던 AI라는 세계를 조금씩 열고 있는 중입니다. 이렇게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 이 문이 유유히를 더 멋진 곳으로 이어주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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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트 메이크업>
<저스트 메이크업>은 ‘흑백요리사’ 제작팀이 만들었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겨 보기 시작했습니다. 뷰티 분야는 저에게 꽤 낯선 세계였는데,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열정과 직업적 감각을 엿볼 수 있어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게 봤습니다.
프로그램은 다양한 경력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100명 중 최종 1명을 뽑는 서바이벌 형식인데요. 저같이 메이크업 지식이 거의 없는 사람도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의외로 ‘기술’보다 설득의 방식이 흥미로웠기 때문입니다.
출연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심사위원에게 설명하는 순간! 표정, 말투, 제스처, 단어 선택까지 하나의 ‘프레젠테이션’이 되더군요.
같은 메이크업이라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작품처럼 보일 때도 있었고요. 메이크업을 보는 프로그램이지만 어쩐지 ‘설득’에 대한 공부를 따로 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많이 배우며 봤습니다.
이번 주말 몰아보기 콘텐츠로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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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큼 여기 어울리는 사람은 없어"
정동진의 자랑 바닷마을 영화관서점 <이스트씨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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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씨네 북토크 모집>
슬픔이 짙은 안개처럼 덮치던 옥의 죽음은 어느새 장르를 바꾸었다.
엄마의 마지막 3년을 글로 기록한 송강원 작가의 에세이 『수월한 농담』 죽음을 껴안은 사랑과 돌봄과 애도의 시간을 11월의 늦가을 이스트씨네에서 함께 나누며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 『수월한 농담』은 자신의 최선으로 평생 애써온 엄마 옥이 그토록 원하던 삶의 마지막을 위해, 오롯이 엄마의 생에 초점을 맞추고 함께 죽음에 직면한 시간의 기록입니다.
사랑하는 존재의 부재를 마주하고, 슬픔 가운데에도 삶을 사랑하며 함께 살아내는 이야기를 11월의 끝자락 정동진 바닷마을에서,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네요.🥹🙏
✅ 일시: 2025년 11월 29일(토) 오후 4시 (1시간 30분 소요) ✅ 장소: 이스트씨네(강릉 강동면 헌화로 973 1층) ✅ 참가비: 20,000원 (1인) - 『수월한 농담』 도서 1부 - 1인 음료 한 잔 제공 - 이스트씨네 일러스트 엽서 / 유유히 출판사 굿즈 제공
✅ 북토크 신청: 네이버 예약 및 SNS DM 문의
이스트씨네의 초대로 송강원 작가님과 에디터리 출동합니다 히히!
올해가 가기 전에 정동진 이스트씨네를 방문할 기회가 생겨 덥썩 잡았습니다.
여러분도 여름 정동진을 놓쳤다면, 늦가을 정동진에서 만나기로 해요.
열차는 얼른 예매하는 사람이 임자!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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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유유히 레터는 여기까지입니다.
아래 답장하기 버튼을 누르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게시판이 열려요. 보다 쉽게, 서로의 피드백을 함께 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위트보이와 에디터리의 답장도 그 밑에 답글로 달아둘게요. 이번 주 답장도 잘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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