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8일, 늦은 저녁 8시.
우리는 고요한 골목길에 접어들어 노오란 불빛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벚꽃이 막 꽃망울을 터트리고, 어느새 걷기 좋은 봄밤이 도착한 날이었지요. 책들의 공간 북티크에서 장강명 작가님의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출간 기념 북토크가 열렸습니다. 스무 명 내외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오붓하고 다정한 눈빛이 오가는 분위기에 시간이 잠시 멈춘 듯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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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티크에서는 “독자의 리뷰 한 줄에서 시작한 인터뷰” 컨셉으로 진행해보았어요. 에고서핑을 하지 않는 장강명 작가님을 대신해서, 늘 저희 책 제목을 검색해보는 제가 독자의 리뷰를 일부 읽어드리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더 듣고자 했어요. ㅎㅎ
“내가 은근히 장강명 작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중략) 내가 장강명을 좋아한다.” 와 같은 글을 작가님 앞에서 읽었는데, 작가님이 매우 쑥스러워하신 건 안 비밀.
한 권의 책을 읽는 속도보다 넷플릭스 영상 정주행이 더 쉬운 시대에, 책을 쓴다는 것 그리고 그 책을 읽은 독자들과 이렇게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은 2019년 8월부터 시작한 연재가 한 권의 책으로 충분하다는 분량이 모일 때까지 시간이 제법 오래 걸렸고, 책을 만드는 과정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대략 순수한 시간으로는 세 달 가량 진행이 되었을 거예요. 그렇게 만든 책이 독자의 손에 쥐어지기까지, 그리고 독자가 책을 펴들고 책을 다 읽기까지의 시간은 평균 일주일 정도라고 해볼까요?
이렇게 책은 오랜 시간에 걸쳐 한 사람의 머릿속에 머물렀던 생각이 타인에게로 온전히 가닿는 신기한 매체입니다. 시간에 쫓기는 우리에게, 책은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도록 지긋이 눌러주는 문진처럼, 이 순간에 잠시 머무르라고 쫓기지 말고 문장에 충분히 머무르는 시간을 내어보라고 말하는 듯해요.
그래서 오히려 독서는 수시로 오는 연락이나 알림을 꺼두고 몰입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쉼의 기술로도 매우 유용하지요. (주변에 숨도 못 쉬게 바쁜 분들에게 책을 권해보아요. 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독서가 힙이다 라고 외쳐봅니다 ㅋㅋ)
어찌 보면 책을 만들고 그 책을 읽어준 독자를 눈앞에서 만나는 일은 망망대해에서 떠내려온 유리병에 담긴 메모를 읽는 듯한 기분도 들어요.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된 건 그만큼의 확률이 아닐까 싶어서요. 이렇게 저자에게서 독자로,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책이 유일하게 쌍방향이 될 수 있는 날이 바로 오늘과 같은 북토크 행사가 열리는 날입니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저는 이런 자리가 무척 소중하고 장강명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의 기운을 받는 자리”에서 햇빛 같은 에너지를 모아 다음 책을 만드는 데 한 줌씩 꺼내어 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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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작가님은 바쁘게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시대와 떨어져서, 때로는 가만히 누워 있는 것처럼 보여도 자신의 작품을 구상하고 생각하는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해 만족을 하고 있고, 때로는 시대의 맥락에서 벗어나 있는 듯한,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할 외로움에 시달리기도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럼에도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아도 묵묵히 수련하며 자신의 몫을 들기 위해 훈련하는 차력사처럼, ‘문단의 차력사’로서 글을 써보겠다고요. 그러면서 작가님께서 시 한 편을 읊어주실 뻔(!)했는데, 그 자리에서 차마 낭독하지 않은 시를 레터에 소개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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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주면
돌을
깼다
쇠를 주면 쇠를 깼다
울면서 깼다 울면서 깼다
소리치면서 깼다
휘발유를 주면 휘발유를
삼켰다
숟가락을 주면 숟가락을 삼켰다
나는 이 세상에 깨러 온 사람,
조일 수 있을 만큼 허리띠를 졸라맸다
사랑도 깼다
사람도 깼다
돌 많은 강가에 나가 나는
깨고
또 깼다
―유홍준, 「차력사」 전문,
시집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시인동네, 2020)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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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의 만남, 바람결에 날려온 보드라운 꽃잎을 괜히 만지작거리게 되는 봄날에, 오래 간직하고 싶은 추억을 저장했습니다. 기꺼운 발걸음을 해주신 독자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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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는 인문문학사회 분야의 젊은 연구자들에게 '책보다 짧고 논문보다 쉬운' 글을 써달라고 의뢰해, 분기에 한 번씩 하나의 키워드를 주제로 잡지 <한편>를 펴내고 있습니다. 저는 관심이 가는 주제를 그때그때 살펴보는 느슨한 독자인데요. 몇 주 전 서점에서 #콘텐츠 라는 제목에 끌려 구입해 차분히 읽었습니다.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요즘은 거장의 만화에서 고양이 동영상까지 전부 콘텐츠"라 부른다고요. 별다른 걸 하지 않는 일상을 나누는 브이로그부터 예능인들의 건강검진 영상까지 보고 있으려니, 별게 다 콘텐츠로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는데요.
뭔가 사람들 사이에서 핫하다, 싶으면 때를 놓치지 않으려고 즉각적인 반응에 한 숟가락 얹고 싶어서 무언가를 봐야 한다는 강박에서 나는 자유로운가 하는 반성도 되었습니다. 다소 산만하게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어떤 이슈에 대해 다 알지 않아도 얼마든지 괜찮죠.
누구나 콘텐츠를 만드는 시대에 책이라는 또 하나의 콘텐츠를 내어놓어야 하는 저는, 독자의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도 좋을 콘텐츠란 무엇인가,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찾고 있습니다. "부동산 폭등, 폭락만을 외치는 기사의 홍수 속에서도 '내가 사는 집' 이야기를 들려주는 다큐 콘텐츠" <EBS 건축탐구 집>이 존재하듯이 말입니다(위트보이가 참 즐겨 보는 프로그램입니다).
무언가를 기획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내가 만들어야 하는 콘텐츠라는 게 대체 뭐지? 싶을 때 읽어보시면 좋을 책으로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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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범죄자가 어떤 삶을 살았고 범죄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설정하되, 피해자에게 상처가 될 지점은 극에 드러내지 않는다, 가 제 기준점인 것 같습니다. 참 어렵죠. 감히 어떻게 제가 상처가 될지 아닐지 결정할 수 있을까요.
또 너무 신경 쓰다보면 시청자가 빌런의 행동을 이해 못할 수도 있어요. 제 밥벌이를 위해 누군가를 상처받게 하지는 말자고 되뇌며 항상 공중에서 외줄 타는 심정으로 조심 또 조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 씨네21 <Drama Writers> 중 김수진 작가 인터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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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작가 인터뷰에 꽂혀 정주행을 시작했습니다. 작년 5월 JTBC에서 방영된 이 드라마는 당시에도 꽤 높은 시청률을 자랑했었는데요, 사는 게 바쁘다 보니 엄두도 못 내다 이제야 뒤늦게 봅니다. 잘 만든 드라마는 이런 것이구나 깨달으면서요.
사람이 많이 죽지만 누구 하나 허투루 버려지는 인물이 없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다시는 못 보게 된 사람을 위해 애도도 충분히 담아냅니다. <괴물>에 빠져 있다 보니 그냥 지나치던 경찰서 하나도 친근하게 여겨지는 건, 과몰입이겠지요? 이제 곧 12화를 봅니다. 인물들과 헤어질 준비도 하면서 차근히 끝까지 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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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2화. 책이 밥 먹여주냐? 네, 먹여줍니다! 편집자 '에디터리'와 나눈 출판의 세계!>
장안의 화제 팟캐스트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에 에디터리 등장! >_<
이 빼곡한 소개처럼, 제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두둠칫 스테이션을 홍보하랴, 늘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축구 이야기하랴, 우리 유유히 이야기하랴 바쁘고 바빴습니다. 시종일관 유쾌하게 이야기를 이끌어주신 두 진행자, 아술아, 정만춘 님께도 감사드려요!
아직 못 들으셨다면, 들으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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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유히 두 번째 책은 무려 10명의 작가님들이 함께 쓰는 엔솔로지입니다. 키워드는 '여행'이고요. 3월 31일이 원고 마감일이랍니다. 빠르게 마감해주신 작가님들께 허리 숙여 깊이 감사드리며, 아직 저에게 미처 연락하지 못한 작가님들께 레터로나마 안부를 여쭈어요. "작가님~~"
6월 초에 선보일 유유히의 두 번째 책,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히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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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뉴스레터를 어떻게 읽었는지, 조금이라도 나누고픈 이야기를 전해주실 때마다 에디터리와 위트보이는 인류애가 솟습니다. 한 줄이라도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편히 두드려주세요. :) 응원이 큰 힘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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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 좋게도 회사 근처에 낙산이 있어서 점심식사 후에 낙산에 자주 오릅니다. 15-20분 정도 짧게 돌지만 다가오는 계절을 온 감각으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아요. 저희 훼이보릿 산책 코스랍니다.
_요술피리
☞ 저의 추천 산책 코스는 노을공원이예요. 가양대교쪽으로 올라가서 노을공원을 한바퀴 크게 돌아 주차장쪽으로 내려오는 건데요. 한강도 보고 숲속도 거닐고 잔디밭에서 미술작품 감상도 하면서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중간에 매점도 있어요 👍 늦었지만 새로운 시작 응원하고 있습니다. 출판사도 유유히톡도 두둠칫도 쭉쭉 흥하세요~
_클루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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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유유히 레터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주 레터는 위트보이님이 보내드릴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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