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란히 앉아 무화과 향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홀짝이다가, 그제야 나는 내가 자꾸만 돌아오는 이유를 알았다. 엄마 때문이 아니었다. 내게는 이것이, 이 기억이 있기 때문에. 삼촌과 함께한 시간뿐 아니라 삼촌의 없음을 견딘 날들 덕분에, 나는 고장 난 채로도 아주 조금은 괜찮은 인간일 수가 있기 때문에.
- <무화과의 없음>(현대문학 7월호 수록) 문진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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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세찬 비가 내렸습니다.
저희 베란다에는 작은 플라스틱 통으로 매달아둔 새모이집이 있는데요. 얼마나 비가 거세게 내렸는지 방충망 쪽으로 모이가 모두 쏟아져버린 걸, 방금 일어나 눈 비비며 확인을 했습니다. 일단 아침을 먹으러 온 작고 귀여운 비둘기가 있어서, 해바라기씨와 찰수수, 땅콩을 꺼내두니 하루냥과의 눈맞춤에도 아랑곳없이 식사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갔어요.
지난 2주는 역시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쓰면서 깨닫습니다. 이 일의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게 맞나? 계속 밀려오고 끌려가고 있지는 않나..?)
우선 레터에 슬쩍 이야기했던 만화가님을 만나 무사히 계약을 완료했습니다. 우연히 작품을 발견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만남을 청했는데요. 당장의 신간 마감으로 미팅까지 일주일이 넘게 시간을 두었는데, 그간 작가님은 유유히 탐구를 무사히 마친 뒤였습니다. ㅎㅎ (유유히톡도 구독해주시고요! 작가님 보고 계시죠?)
광화문의 한 카페 테이블에 앉아 앞으로의 작업 계획을 나누고, 마감 일정과 출간 일정을 대략적으로 이야기하고, 계약 관련한 사항들을 간략히 설명 드리고, "돌아가서 계약서를 보내드릴 테니 검토해보시고 서명을 부탁드립니다"라고 인사하고 돌아오는 길. 그날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출간 제안을 하고 이렇게 빠르게 마음이 맞아 훗날의 출간을 도모하는 게 흔치 않은 인연이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요. 유유히를 믿고 소중한 작품을 주신 감사함과 유유히를 처음 알게 되어도 신뢰가 가는 브랜드가 되었구나 하는 뿌듯함을 동시에 느낀 날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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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나무사이로 카페의 둥근 원테이블에 '시작의 테이블'이라 혼자 이름을 붙였습니다. ㅎㅎ 작년에는 이 테이블에 단춤 작가님과 마주 앉아 <감정 사전>을 막연히 떠올리며 의기투합을 했고, 올해에는 비스카차 작가님을 마주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좋은 시작을 하게 해주는 행운의 테이블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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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히의 9월 신간, 송강원 작가님의 <수월한 농담> 많이 궁금하셨죠...?
지난 레터에서 소개한 출간 전 연재 레터도 2회 발송되었는데(레터를 쓰고 있는 4일 오전 기준), 강원 님의 글에 함께 공감해주고 토닥여주고 안아주는 피드백을 해주신 독자분들에게 감사드려요.
인생에서 가장 겪고 싶지 않은 일. 사랑하는 존재의 없음이 얼마나 큰 무게로 다가오는지 알고 있기에, 어떻게 이 이야기를 잘 전할 수 있을까를 계속해서 고민했습니다. <수월한 농담>에는 누군가의 평범한 하루처럼 마냥 슬픔만 있는 게 아니죠. 병실에서 함께 몸을 기대고 손을 꼭 붙잡고 온기를 나누던 날도 있고, 새벽에 온열램프 빛에 의지해 그 시간들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 날도 있고, 언제나처럼 '도련님'이라 부르며 온몸으로 자신을 반기는 엄마가 왠지 부끄러워 얼어붙었던 꼬마 강원도 있고요. 젊은 날 동래시장 한복판에 위치한 '참한 의상실'에서 의상디자이너로 멋지게 꾸민 엄마가 손님들과 동료들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떻게 말했는지, 그 생기를 기억하는 아들의 시선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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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옆에 누워 있는 게 좋았다. 병실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간이침대를 엄마 옆으로 붙였다. 엄마 침대 높낮이를 적당히 조절하면 간이침대에 누운 내가 엄마 손을 잡고 어깨에 기대기 딱 좋은 위치가 되었다. 기운이 없어 목소리가 작아지는 날에 엄마 말을 놓치지 않기에도 충분히 가까웠다. 섬망으로 엄마가 불안해하면 나는 바짝 붙어 누워 엄마 손을 더 꼭 잡았다.
- <기도 같은 믿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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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고에 푹 빠져 지낸 지난 10개월이었고 이제 조금씩 헤어나오는 중입니다. 강원님과 옥님만의 추억, 말로 꺼내기 것보다 쓰는 게 나아서 밤새 써내려갔을 속이야기가 손에 잡히는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화요일에 인쇄를 무사히 마쳤고요, 원래는 책이 나오면 책을 들고 MD 미팅을 다녔는데, 이번에는 인쇄본을 들고 미팅을 한 주 전에 다니고 있습니다. (어제는 알라딘, 오늘은 인터넷교보를 다녀옵니다)
많이 궁금하셨을 표지를, 유유히톡을 통해 먼저 공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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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출산과 동시에 죄책감을 낳고, 자녀는 엄마의 슬픔과 뒤엉켜 태어난다. ‘엄마’ 앞에 고개 숙여온 많은 이에게 이 책은 힌트를 준다. 우리 사이에 흐르는 감정을 하나로 남기지 않는 법을,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욕망에 귀 기울이는 법을, 죽음 앞에서 ‘죽는 게 쉽지 않제’ 농담하는 법을.
당신을 잃는 과정이 이토록 치열하게 당신을 읽고 쓰는 태도라는 사실을 배운다. 당신을 여러 겹으로 살리려는 애/씀으로 우리가 계속 이별하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도. 아픔과 돌봄, 상실의 순간에 나는 이 책을 쥐고 있을 거다.
_ 홍승은 (작가, 글방 ‘불확실한 글쓰기’ 안내자)
“엄마, 죽는 게 쉽지 않제?”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대신, 죽자는 엄마에게 웃자고 달려드는 아들.
이들의 투병과 돌봄은 예정된 죽음을 향한 행진과 에스코트에 가깝다. 어떤 상실이 상상만으로 내 삶을 집어삼킬 듯 거대하다면,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은 직면뿐이다. 그래서 강원은 마지막까지 써냈을 것이고, 당신은 마지막 장까지 읽을 것이다.
_ 곽민지(작가, 팟캐스트 <비혼세> 진행자)
인간은 모두 죽는다. 엄마도, 죽는다. ‘나’ 라는 존재의 테두리를 만들어준 사람이 도리 없이 영영 사라진다. 차라리 농담이면 좋겠는 일이 태연하게 벌어지는 게 삶이라는 걸 가르치듯. 송강원은 상실의 빈자리에 글로 몸을 만들고 옷을 지어 입힌다. 생활의 갈피마다 애도를 끼워 넣으며 엄마의 부재를 감당한다. 산뜻한 슬픔의 안쪽에 살아내려는 그의 안간힘이 포개져 있다. 그 누구보다 『수월한 농담』을 읽은 ‘옥’의 독후감이 궁금하다. 그 일이 이제는 영영 불가능해졌다는 사실이 이 성실한 애도를 완성한다.
_ 장일호(시사I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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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0일에 배본을 합니다. 온라인 서점에서 가장 먼저 만나보실 수 있을 거고요. 오프라인 서점은 빠르면 그 주 주말인 13일부터, 혹은 그 다음 주부터 만날 수 있어요. 배본날 이후에는 즐겨 가는 서점에서 주문을 해주시면 바로 다음 날 받아보실 수 있을 거예요.
조금 더 선선해진 가을날에 반갑게 맞이해주기를 바라며 오늘 레터 이만 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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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듣게 되는 노래 <괜찮아(Fine)>
매주 이유 없이 웃는 관객들 앞에서 어리둥절하던 MC 박보검이, 드디어 자신의 얼굴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될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박보검의 칸타빌레>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어요. 매주 방송 이후 뮤지션들과 훌륭한 무대를 소화해내며 잔망과 즐거움을 주던 박보검과의 이별이 아쉽지만 또 좋은 작품으로 돌아올 그를 기다립니다. (한국방송대상 '최우수 예능인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하고요! >_<)
모르겠거나 낯설고 무서울 때 매일 밤 걱정이 되고 어떡할까 고민될 때
혼이 나거나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미워지거나 도망치고 싶어질 때 한 번쯤 떠올려줘 너는 지금
괜찮아 어디로라도 가도 좋아 왜냐면 내가 여기 있을 테니까 이제 괜찮아 언제든 돌아와도 좋아 왜냐면 내가 널 기다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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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다 팟캐스트 <비혼세>에서 <수월한 농담> 특집 방송으로 만나요!
지난 일요일 밤, 후암동에서 송강원 작가님과 비혼세 곽민지 작가님의 팟캐스트 녹음 현장 사진입니다. ㅎㅎ (맥주 아니고 보리차)
이 책의 시작이 된 방송이 바로 이 팟캐스트 인데요.
<EP237. 죽음과 마주 앉은 엄마 곁에서>를 듣다가 당시 호스피스 생활을 하고 있는 엄마 곁에 있는 아들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덤덤히 하는데, 그 이야기 중, 엄마와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는 말에 번쩍 귀가 뜨였습니다.
송강원이 누구지, 하며 그날 작가님 인스타를 타고 강원님 계정을 알게 되었고 거기서 브런치 연재 중이었던 <엄마가 저물어간다>의 10편을 읽게 되었고, 그 밤에 넷플릭스에서 다큐 <퀴어 마이 프렌즈>를 보고 맙니다. 그러니까 꼬박 24시간도 안 되어 '송강원'이라는 한 사람의 일생을 압축적으로 본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비혼세 님은 실제로 강원 님의 엄마 옥의 장례식을 유일하게 두 번이나 조문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수월한 농담>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웃음과 유머가 난무할 수 있다니.. 능수능란한 진행과 말솜씨에 옆에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감탄만 하고 있었답니다. ㅎㅎ
9월 12일에 업로드될 방송을 기대해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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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만의 방> 김그래 "2025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신진문화인상" 수상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은 문화·체육·관광 전반에서 성평등 환경 조성과 인식 제고에 노력함으로써 우리 사회 성평등 문화 확산에 기여한 문화예술인과 문화예술 단체에 수상하며, 2008년에 제정해 올해로 18회째입니다.
올해 상복이 터졌구나~ 에헤라디야☺ 서울국제도서전 무대에 이어, 국립민속박물관 강당에 두 번째 오르신 작가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엄마만의 방> 주인공, 작가님의 어머님도 실제로 뵙고 인사 나누어서 정말 감격스러웠답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자신만의 공간이 주어지지 않았던 시절을 지나, 쉰이 넘은 나이에 난생처음으로 해외에 나가 1인분의 삶을 꾸려보는 도전을 해낸 엄마. 그리고 그 엄마의 모습을 차근차근 그려 기록한 김그래 작가님.
덕분에 우리에게 꼭 필요한 용기를 담은 책이 되었습니다. 어디서든 <엄마만의 방> 많이 만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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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둠칫 스테이션 <EP149. 초등학생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즐기는 만화책(수신지 임진아의 보나 만화!) [커피타임]>
만화책 보기 참 좋은 계절입니다 😌
✅수신지 <반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 5 (귤프레스) 너덜너덜해진 책을 들고 장면과 대사 모두 외우는 초등학생 어린이 팬들부터 아랑, 연두, 은이의 묘한 관계가 모두 이해되는 어른까지 충분히 즐기기 좋은 만화. 9월 21일까지 합정동 ODOM(마포구 토정로3길 13 1층) 팝업스토어 굿즈와 전시도 잊지 마세요. 맥주 제일 빨리 마시는 언니가 그리는 박력 있는 만화 시리즈 올가을 언리밋에 찾아올 6권을 기대하고 기다립니다.
✅아르노 네바슈 <이것이 새입니까> (바람북스) 저작권 관련 수업 중 ’브랑쿠시의 재판‘을 알게 되어 그리게 된 그래픽노블. 예술가의 입장에서 예술이란 무엇인가 생각을 하게 되는 책. 예술품은 쓸모가 있어서는 안 된다, 기계로 전 과정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일단 그림도 색감도 멋있어서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만화. - 같이 읽으면 좋을 책: 유승하 <내 마음 하나 잊지 말자는 것이다> (창비)
✅엄유진 <순간을 달리는 할머니> 1, 2 (문학동네) 이야기 하다 말고 눈물을 글썽일 수밖에 없는 가족 이야기. 슬픔을 이길 수 있게 만드는 유머의 힘은 세다! ”엄마는 마음껏 잊어버려. 내가 모두 다 추억할게.“
✅구정인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 (문학동네) 6호선 역마다 한 에피소드가 흐르는 재미. 마치 같이 지하철을 타고 있는 느낌. 현실판 우리 엄마는 여기 있네? ”엄마는 엄마의 엄마에게 어떤 말을 듣고 싶었어?“ 엄마에게 하지 못한 말들이 가득 쌓인 만화.
✅츠즈이 <도약하라! 츠즈이씨> (문학동네) 이토록 유쾌하고 호쾌하고 재밌는 만화 왜 안 읽죠. 과몰입 오타쿠 성인 여성 다섯이 모여 모임명 ’전생부터의 벗!‘ 나만의 명장면을 찾아서 당장 달려가셔야 합니다.
100분이 넘는 러닝타임! 길어서 좋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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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유유히 레터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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