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덜터덜 소리를 내며 귀가하는 골목길을 '지친 언덕'이 아닌 '회복하는 언덕'으로 만드는 건 언제나 좋은 노래를 골라 듣는 나의 몫이었다.
내게 좋은 음악은 무엇일까.
아무 날인 오늘, 유독 선명하게 들리는 노래.
나는 오늘의 희망곡을 지나치고 싶지 않아 매일 노래만을 듣는 시간을 제대로 가진 후에야 내일로 건너갔다. 혼자 걸어가야만 하는 이 먼 여행의 동행자가 노래라는 것이 좋았다. 형체는 없으면서도 너무나도 묵직한 나의 노래 친구. 옛 가요를 듣는 일은 내가 보낸 음악 편지를 받는 일. 옛 노래만 들으면 잊은 줄 알았던 이야기들이 고개를 내민다. p.9
- 임진아 <진아의 희망곡>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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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폭우가 내리더니 목요일 오후 고양시는 살짝 해가 비칩니다.
비 피해가 많은 지역들이 연일 뉴스로 들리는 요즘, 무사한 여름 보내고 계신가요.
이번 주에는 출퇴근을 하며 <진아의 희망곡>을 다 읽었습니다.
좋은 에세이를 읽으면 어쩐지 친구처럼 느껴지면서 나도나도, 이런 일이 있었어 하고 제 이야기를 꺼내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요. ㅎㅎ 오늘 레터에서는 90년대 꼬마였던 저의 시간여행으로 함께 떠나보실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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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최애 영상 중 하나인 1993년도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에 이승환이 명곡 중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을 부르고 있어요. 이 영상은 플레이하는 즉시, 그 시절 그 공기 속으로 저를 소환합니다.
사실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1992~1994)보다는 그 이후의 <이소라의 프로포즈>(1996~2002) 애청자였는데요. 어쩐지 따스하고 정겨운 분위기의 무대와 세상 깔롱하게 꾸미고 방청객으로 초대되어 앉아 있을 사람들 사이에 제가 앉아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자주 상상해봅니다. ㅎㅎ
실제로 대학생이 된 이후 2003년에는 사연 당첨이 되어 <윤도현의 러브레터>(2002~2008)를 보러 대전에서 기차 타고 여의도 KBS를 찾아간 추억도 간직하고 있어요.
이로부터 32년이나 지나.. 해맑게 웃는 어린 노영심과 이승환을 보며 여전히 이 노래를 듣고 이 무대를 보고 있다는 게 진짜 타임머신을 타고 있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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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 때 서울에서 대전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동생을 업은 엄마 손을 잡고 동네를 걸었던 기억부터 어렴풋이 있어요. 처음 살았던 곳은 대전시 동구 홍도동. 언덕이 조금 있는 곳에 공업고등학교가 있었고 정문에서 길을 따라 내려오면 왼쪽 모퉁이에 문구점 겸 구멍가게 하나, 그 맞은편이 원래는 가게 자리였어야 할 듯이 미닫이 유리문으로 된 1층 집(거실 겸 부엌 하나, 침실 하나가 전부인)이 저희 집이었어요. 2층엔 집 주인이자 동네 무당이자, 노트 공장을 운영하는, 어린 제가 봐도 조금 무서운 할머니가 가족들과 살고 있었고요.
엄마는 주인집 할머니 노트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고, 저는 동생과 놀다가 동생이 실례를 하면 엄마에게 "얘 쉬했어~" 하고 기저귀 갈아달라고 데려가곤 했습니다. 일하는 엄마 옆에 있고 싶어서, 간 김에 눌러 앉았다가 얼른 나가보라는 엄마의 눈총을 받았던 기억도 있네요.
그러다 초등학교 1학년 때쯤 이사를 합니다. 조금 더 언덕으로 올라가면 큰 아름드리 나무가 있는 골목길이 나왔고 흙바닥인 골목길을 들어가면 꺾인 곳에 초록 대문의 집이 있었어요. 화장실도 푸세식으로 대문 바로 옆에 있고 가운데 수돗가에서 씻고 물을 뜨고 해야 하는, 연탄 아궁이를 때는 집이었지만, 두부를 손수 만들어 파는 주인집 할아버지 할머니가 인자하셨고 대문 쪽 작은 방 할머니도 늘 기특하게 저를 바라봐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수돗가 옆 앵두나무의 앵두는 다 제 차지였고, 주인할머니의 누렁이도 제 친구였어요. 골목길을 나가서 바로 왼쪽 집에 사는 언니는 저보다 3살 정도 많았는데 막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를 따라 불렀고, 오른쪽으로 돌아 나가면 동네 슈퍼 앞에 늘 동네아이들이 복작복작하게 몰려 나와 고무줄이며,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술래잡기 등등 학년 상관 없이 매일 깜깜해질 때까지 노는 게 일이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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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축제의 백미, 물풍선 던지기>(연합뉴스 2016-05-11)
하루는 동네 아이들과 대학교에 놀러가기로 합니다. 걸어서 20분 정도 가다 보면 한남대학교가 있었어요(그땐 하루 종일 걸어도 지치지 않는 체력 덕분에 어디든 쏘다녔던 것 같아요. 우리 집에서 멀리 더 멀리 가보는 게 모험이었죠).
마침 그때가 축제였나 봅니다. 정문을 들어설 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니 바로 보인 게 저 "물풍선 던지기"였습니다. ㅎㅎ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한 번 해보라고 쥐어주기도 했던. 어디를 가도 어린이라고 어떤 대우를 받는 게 아니라 그저 어린이여서 더 반갑게 맞이해주던 어른들이 있었습니다.
<진아의 희망곡>에는 임진아 작가님과 성냥탑을 쌓으며 놀아주던, 부모님이 운영하던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성냥 오빠"가 등장하는데요. 그 부분을 읽다 보니, 추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집 주변에는 자취하는 대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만난 어떤 오빠는 동네에서 놀던 저와 친구들을 집(정확히는 방)으로 들어오라며 맛있는 과자도 주고 매트리스 위에서 방방 뛰게 내버려두었죠.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그 집에서 스스럼없이 즐겁게 놀았던 것 같아요.
지금에야 모르는 사람의 집으로 들어간다는 걸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언제든 누구의 집이든 열려 있으면 빼꼼 얼굴을 내밀고 "목 마른데 물 한잔 마실 수 있을까요?"라고 어린이답지 않게 정중하게 물으면 시원한 물을 내어주던 이웃들이 있었던 90년대의 풍경입니다. 엄마가 일 때문에 늦는 날이면 친구들 집으로 가서 저녁을 얻어 먹는 게 자연스러웠던 그런 날들. 그땐 한 동네가 다 우리집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부족한 환경에서도 부족함을 잘 모르고 자랐던 제가 어느새 마흔이 넘었고, 이렇게 노래 속에서나 한 조각 추억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습니다.
잊고 있었던 조각조각을 잇다 보니 그때 그 시절 반가운 얼굴들도 떠올리게 되고요. 함께 뛰어 놀던 언니 오빠 친구 동생들은 어디선가 내가 모를 하루를 보내고 있겠죠.
노래가 흔하지 않던 시절, 주파수를 맞추고 밤에 듣는 라디오는 꼭 저에게만 해주는 따뜻한 말들 같았고 앨범 하나를 사면 한 달은 지겹도록 반복해 듣고 또 듣던 게 이제는 낭만이 되어버렸어요.
모든 게 넘치는 2025년이지만, 어쩐지 마음은 계속 90년대로, 지금보다 젋고 힘이 넘쳤던 부모님의 곁으로, 마냥 즐거웠던 친구들과 함께 땀으로 흠뻑 젖으며 뛰어다니고 싶어집니다.
떠올릴 즐거운 추억이 많아서 조금은 다행인 날들입니다.
그럼 오늘의 시간여행, 여기서 마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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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만의 동아시아컵 우승! 여자축구 만만세!
언제나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여자축구에 대해 떠들 준비가 되어 있는 에디터리입니다. ㅎㅎㅎ (피하지 마세욧!)
2025년 7월 7일~16일 한국에서 일본 중국 대만 그리고 한국이 출전한 동아시아컵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여자축구팀이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꺅!!!!
중국과 일본을 모두 아슬아슬하게 각각 2:2, 1:1로 비겼는데,
마지막 경기에서 중국과 일본이 0:0으로 비기는 바람에(이로서 한중일은 서로 모두 비긴 결과가...!) 한국은 대만을 이기기만 하면 우승이었고 그렇게 해냈습니다. ㅎㅎ
매 경기에 최선을 다한 모든 선수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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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팀 언니 라인 (왼쪽부터) 장슬기(94) 이금민(94) 지소연(91) 김혜리(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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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전에서 극장골을 넣은 지소연 선수의 점프샷! ㅎ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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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대 첫 발탁에 우승까지 해버린 김민지(서울시청 소속) 선수. 이번 동아시아컵 경기를 보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뛰는 모습에 반했습니다. WK리그 서울시청 홈경기를 보러 달려가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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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마포책소동 무사히 마쳤습니다!!!
플랫폼P에는 입주자협의회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마치 대학교 시절 학생회 같은 느낌인데요?! ㅎㅎ 마포구청장의 횡포로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을 때, 너도나도 힘을 합쳐 시위를 하고 그중 가장 큰 행사가 2023년 1회 마포책소동이었습니다. 여기 이 소중한 곳에서 책을 만들고 있는 창작자, 출판인 들이 손을 들었고 독자분들이 손을 잡아준 날이었죠.
이후 다행히 플랫폼P는 살아남았고, 2024년 7월, 딱 1년 전에 유유히는 무사히 입주했습니다. 다정한 이웃들과 매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생활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렇게 제2회 마포 책소동이 지난 7월 12일에 성황리에 열렸습니다.
도서전 때는 책이 아닌 무언가를 경험하러 온 독자들이었다면, 책소동에서는 오롯이 책을 구매하러 온 독자들을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또 행사 중 하나로 '텍스트 힙'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도 나눠봤고요.
잔치를 마련해주느라 생업과 동시에 바빴을 운영진 여러분과 와주신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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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둠칫 스테이션 - EP143. 책을 읽고 글을 쓰면 궁전으로 갈 수도 있어(김성신 서평가, 사공영 편집장)[커피타임]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게 직업인 사람,
그런데 이제 30년째 써온 사람, 김성신 서평가와
'가장 오랫동안 활동해온 서평가'이자
'서평가를 발굴하는 서평가'에 호기심을 느낀 사공영 편집자.
전형적인 서평가가 되는 법이 아니라 서평으로 세상을 넓혀온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쏟아지는 7만 종의 출판 시장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찾기 위해서는 큐레이터(서평가)의 역할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고요.
어떤 글과도 다르게, 책을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서평을 쓸 자격이 생긴다는 것.
정말 신기하죠?
더불어 출판시장과 독자의 변화, 서평을 유용한 전략으로 자신을 경영하는 방법도 을 통해 배워봅니다.
서로 연결되면 우리의 세계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출판계의 아이콘을 만들어보는 것도 또 하나의 꿈으로 품고 있는 김성신 서평가를 지금 만나보시죠! :)
"사공영 편집장은 저자의 좋은 면을 먼저 사랑해버리고, 그 사랑을 신념으로 만들어 독자에게 전이시켜버려요."
편집자를 신뢰하는 김성신 선생님의 말도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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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너의작업실 <쓰는 사람의 문장 필사> 글쓰기 워크숍
지난 7월 11일 고수리 작가님과 함께 금요일 저녁을 보냈습니다. 일산의 자랑 너의작업실 클래스룸에서 도란도란 모여 글쓰기의 세계를 탐구했는데요.
글이 쓰고 싶어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방송작가로 늦게 입문하고, 현장에서 구르며 글을 쓰면서 돈을 벌다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쓴 글들이 브런치 1회 금상 수상작이자 첫 책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2016)이 되었습니다.
이후 꾸준히 글을 쓰는 것만으로 이번에 일곱 번째 책 <쓰는 사람의 문장 필사>를 지었고, 자신의 삶과 시선을 솔직히 드러내면서 누군가의 평가와 비난이 두려우면서도 한 걸음씩 "맞장 뜨자"는 마음으로 걸어왔다는 솔직한 고백도 들었고요. ㅎㅎ
글을 쓰면서 점점 더 좋은 삶을 살게 되었기 때문에, 글을 쓰면서 자신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친해지는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함께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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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9일 안양 썰스티에서 만나요! <쓰는 사람의 문장 필사> 북토크
안양에서 북카페를 운영하고 계신 이유미 대표님은 에디터리와 긴 인연이 있습니다. 아직 출판 기획을 잘 모르던 시절... 29cm의 카피라이터 이유미 대표님께 용감하게 첫 기획서를 내밀었던 것이죠. ㅎㅎ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는 출간 방향이 맞지 않아서, 작가님과 의기투합했던 마음을 내려놓느라고 힘이 들었던 때가 떠오릅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작가님은 안양에서 서점을 시작하셨고, 다시 남편과 함께 북카페를 시작하셨어요. 1층은 음료를 주문할 수 있고 지하로 내려가면 책으로 가득한 서점이 나타난다고요!
평소 인스타를 통해 이유미 대표님이 잘 읽고 추천해주시는 책들을 또 따라 읽으며 계속 내적 친밀감을 키워왔는데(무제 박정민 대표가 그랬죠. 책방 주인들은 책을 정말 열심히 부지런히 읽어야 한다고요ㅎㅎ), 드디어 달려갑니다.
이유미 대표님이 책 좋다고, 출간 이후 바로 초대해주셨고요. 고수리 작가님과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려고요. 아직 자리가 있으니 서울에서 못 만나 아쉬웠던 분들은 아래 링크로 신청하시면 됩니다.
얏호! 안양에서 만나요 💚
일시 : 2025년 7월 19일 토요일 오후 5시 30분 (60분 진행 예정)
장소 : 썰스티 북스 (안양시 만안구 안양로 323번길 19/ 1호선 안양역 도보 5분)
참가비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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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유유히 레터는 여기까지입니다.
아래 답장하기 버튼을 누르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게시판이 열려요. 보다 쉽게, 서로의 피드백을 함께 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위트보이와 에디터리의 답장도 그 밑에 답글로 달아둘게요. 이번 주 답장도 잘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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