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짝할 새에 2주가 흐르고 레터를 쓰고 있습니다. 지난 레터를 읽고 엄청나게 많은 분들이 저희 하루 부장님의 쾌차를 기원해주셨어요. 한 글자씩 꼭꼭 눈에 담으며 힘을 냈습니다. 그 결과, 오늘 다녀온 병원에서는 746까지 찍었던 간수치가 91을 기록했다고, 결과가 너무 좋다고 의사 선생님과 함께 활짝 웃을 수 있었습니다.
하루에 먹어야 할 칼로리의 반 정도를 자율 섭취로 해낸 하루는 100퍼센트 스스로 먹을 수 있도록, 다음 검진일인 월요일까지 좀 더 많이 먹도록 유도해서 콧줄을 제거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지나왔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 깜깜한 날들, 내가 선택하는 길이 하루를 위한 것일지 아닐지 마음을 졸여야 했던 시간, 예상이 되지 않는 경과에 자꾸만 안 좋은 상상으로 잠을 뒤척이던 밤들을 지나서 이번 주부터는 슬슬 미뤄둔 산책과 운동도 하고 침대 위에 넷이 나란히 누워 행복하다, 읊조리기도 했습니다. 함께 마음을 나눠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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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피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제법 여유를 부리며 대기실에서 바깥 풍경을 구경하고 있는 하루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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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를 하지 않는 동안, 잠이 안 오는 밤에는 하루를 쓰다듬으며 책을 읽었습니다. 그중 이제야 읽은 책이 박주영 판사의 <어떤 양형 이유>와 장기하의 <상관없는 거 아닌가?>였어요.
<어떤 양형 이유>는 1인출판사 모로에서 출간된 첫 책이지요(얼굴을 본 적 없는 대표님이지만 가끔씩 인스타그램으로 인사 나누는 사이여요 ㅎㅎ).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판결문에 쓴 이 문장 하나로, 마음 따뜻한 분이구나 싶었던 유퀴즈 출연 영상도 화제 당시에 봤지만, 책을 집고 맘 딱 잡고 읽은 게 이제야였고, 지금이라도 읽어서 참 다행이다 싶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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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라고 하면 법에 능통하고 어떤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 누구도 의문을 달 수 없는 판결을 내린다, 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이 책을 읽으니 이것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지,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자신의 판단으로 타인의 삶을 크게 바꾸게 되는, 그 무게를 견디는 자의 흔들림, 약한 지점이 낱낱이 솔직하게 적혀 있더라고요.
압도적 분량의 활자를 읽는 직업이라 눈과 근골격계 질환을 달고 사는 사람,
사회적 약자들을 끊임없이 마주하고,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는 사건들을 법원과 현실에서 떼어놓을 수 없어 혼란스러운 사람,
법복 아래 작고 하찮은 존재라고 스스로를 말하는 사람.
자신을 앞세우는 권위 말고,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어떻게든 뒤에 이어올 세상에 도움이 될 만한 판결을 하기 위해 고심을 끝까지 하는 사람.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아무리 낮춰도 고결하게 빛날 수밖에 없더라고요. 이렇게 좋은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참으로 고마운 밤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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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의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는 저의 오랜 단골인 헤어숍 실장님이 빌려주었어요. 주변에서 추천해서 읽어봤는데 잘 모르겠더라, 한 번 읽어보셔라 하며 제 손에 덥썩 쥐어주셔서 흔쾌히 들고 집으로 돌아왔죠. 평소 장기하의 팬은 아니지만, 작년에 퇴사할 때 그의 노래 <그건 니 생각이고>를 무한 반복했던 기억도 나고요(가사가 지금 들어도 너무 속 시원해... 사이다 필요하신 분 들어보세요).
적당히 알고 있는 사람의 산문은 처음부터 특유의 말투나 표정이 생각나면서, 몰입을 바로 하게 만들더라고요. 파주에 살고 있으면서 i30를 타고 자유로 노을을 자주 즐기는 사람. 인생에 군더더기를 덜어내면서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잘 살아남았고, 빨리 어떻게 좀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날 때마다 “생각해보면 여태껏 살면서, 멋진 순간들은 다 내 의도나 기대와는 무관하게 찾아왔다”는 걸 기억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 그리고 마무리에 적혀 있는 이 부분에 밑줄을 그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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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노래를 만들 때도 그랬고, 내 노래로 위로받았다는 이야기를 꽤 많이 듣고 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남을 위로하겠다는 큰 뜻을 품기보다, 내 마음 하나만이라도 잘 들여다보자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나 자신이라도 잘 위로해주자. 그것만이라도 잘해낸다면, 그리고 운이 좋다면, 결과적으로 누군가 위로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 정도가 노래를 만들 때 위로라는 것에 대해 내가 가지는 생각이다. (254쪽)
머리가 복잡해질 때마다 이 책 제목 “상관없는 거 아닌가?”를 떠올리면, 좋아하는 노래 “그건 니 생각이고”를 되뇌면, 쓸데없이 힘이 들어가 있던 어깨의 높이가 한껏 낮아지면서 아무래도 괜찮아집니다.
아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일에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은 일에 부담감이 짓눌려 있는 분들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해드려요. 완벽한 라면 한 그릇 먹으면서 아 뭐, (내가 뭘 해도) 상관없는 거 아닌가? 하며 여유롭게 배를 두드리게 될지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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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천재 백사장>
새로운 예능이 시작되었는데, 해외로 가서 장사를 한다? 이거 나영석 PD표 예능 아닌가 갸웃하다가, 먹을 거 좋아하고 현지 잘 돌아다니는 백종원 님의 스테디 프로그램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2019)에 업그레이드 버전이네, 싶더라고요.
유튜브에서 이미 "백종원 레시피"로 맹활약을 하고 있는 백종원이지만, 원래 이 분의 본캐는 요리사가 아닌, '사업가'. 이런 매력(해외 현지 적응력 + 사업을 벌이는 능력)을 합치니 '백종원'과 '한식'을 알 리 없는 머나먼 모로코에서 장사를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1화부터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백종원님 스튜디오에서 제작하는 <배고파>도 보게 되었는데, 홍콩 너무 가고 싶네요. ㅎㅎ
사업하는 마인드부터(이 메뉴로 승부보겠다 가 아니라, 상권 분석+소비자의 구매력 등 철저히 분석하는 사람) 배우고 있습니다. :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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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장강명 작가님의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은 채널예스의 연재작입니다. 시작은 <채널예스> 엄지혜 편집장님의 연재 권유로부터 출발한 것이죠. 책을 다루는 잡지가 어느새 94호입니다. 매달 빠짐없이 만든 게 벌써 7년을 훌쩍 넘었다는 이야기구요.
<채널예스>는 예스24에서 만들며, 종이 잡지는 책을 구매할 때 300원으로 구매할 수도 있고, 과월호는 PDF로 다운로드 받아 보실 수도 있습니다. 매달 초에는 예스24 홈페이지에서도 제일 빠르게 새 기사들을 볼 수 있어요.
매번 커버스토리의 작가님이 누구일지, 인터뷰는 어떤 내용이 담겼을지, 새로운 연재는 뭐 없을지, 출판계 트렌드는 무엇인지, 회사 밖 동료들은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등등 흥미로운 소식들을 전해주는 <채널예스>의 애독자였는데, 오늘에서야 이 팬심을 고백해봅니다. 예스24의 24주년도 더불어 축하드리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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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강명이라는 이상한 소설가> by 아레나 옴므플러스 인터뷰
장강명은 목소리가 작고 말투가 부드러웠다. 그 말씨로 날카롭게 현대 작가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자신의 상징적 지향점과 현실적 생활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이 인터뷰에는 엄청나게 문학적인 동시에 전혀 문학적이지 않은 이야기가 섞여 있다. 그는 시대의 맨 앞과 맨 뒤에 동시에 자리한 소설가였다. (에디터 박찬용)
UpdatedOn April 0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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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뉴스레터를 어떻게 읽었는지, 조금이라도 나누고픈 이야기를 전해주실 때마다 에디터리와 위트보이는 인류애가 솟습니다. 한 줄이라도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편히 두드려주세요. :) 응원이 큰 힘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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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집 고양이 이름도 하루예요. 그래서 인스타로 실시간 올려주신 투병기를 보면서 마음 속으로 응원하고 있습니다. 나보다 수명이 한참이나 적은 생명체와 서로 기대며 사는 일은 기필코 작별을 염두에 둔 일이지만, 저는 우리집 하루와 함께 살기를 결심했을 때 미처 그 생각을 못했더라구요 ㅎㅎ 다른 반려동물들의 투병과 이별을 목도할 때마다 가슴이 쿵 내려앉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은 츄르 하나 꺼내어 물려주고 쓰다듬는 일뿐이지만요. 유유히의 하루 부장님이 부디 쾌유해서 더 오래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두 분도 건강 챙기세요.
_manyangbing
☞ 저도 투병 중인 고양이와 함께하는 집사로서, 하루 부장님과 고군분투하는 유유히 분들이 남 일 같지 않아 처음으로 회신을 드립니다. 주사기로 급여하는 거 정말 힘들죠. 콧줄과 튜브들이 고양이에겐 정말 정말 불편할 텐데 밥을 먹어야 하니 안 할 수도 없고 인간으로선 미안하다는 말밖에 못하고 노심초사할 뿐이네요. 병원을 오가며 바람도 쐬면서 하루가 씩씩하게 견뎌주고 있는 것 같아요. 유유히 집사 분들 덕분이겠죠. ㅎㅎ 아픈 고양이는 챙길 게 많아서 정신 없고 지치실 때도 있겠지만 화이팅입니다! 하루 부장님이 상무님 전무님으로 승진하는 날을 멀리서나마 ytn기다리며...
_또 다른 캔따개
☞ 귀여운 털 친구 하루야, 너의 넓은 아량으로 인간들의 작은 실수는 부디 용서해주길 바라. 빨리 쾌차하길 바랄게. 너의 팬이자 후회 많은 집사 올림.
_YS
이 외에도 따뜻한 말 한마디 남겨주신 많은 독자님들께 허리 숙여 감사 인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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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유유히 레터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주 레터는 위트보이님이 보내드릴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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