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아메리카우드콕 한 쌍이 보여요! 아메리카우드콕이요! 저기를 보세요!”
모든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하지만 나보다 간절한 사람은 없어 보였다. 대부분의 종이 그랬지만, 우드콕(균형이 맞지 않을 정도로 긴 부리로 진흙에서 먹이를 찾는 통통하고 이상하게 생긴 새)은 당시 내게 완전히 새로운 종이었다. 이전에 한 번도 보지 못한 종을 처음 봤을 때, 탐조인들은 그 새를 ‘인생 새Life bird'라고 부른다.
- 크리스천 쿠퍼 <블랙버드의 노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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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히톡 99번째 레터를 통해 ‘까제비(좋은 것을 발견하는 까치 + 복을 물어오는 제비)’가 되겠습니다, 하고 선언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느 날 밤, 자기 전에 버릇처럼 인스타그램을 켜고 피드를 살피다가 눈에 번쩍 들어오는 공지를 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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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터에서도 추천해드렸던 만화책 <믿을 수 없는 영화관>의 작가 황벼리 님의 인스타를 통해서 탐조 생활(공원 산책을 하면서 깃털을 줍는다거나, 버드케이크를 준비해 겨울에 식량을 구하는 새들에게 먹이를 준다거나, 무엇보다 귀여운 새들을 맘껏 보는 사진들)을 틈틈이 지켜보던 차였습니다. 제 인생 첫 탐조가 될 타이밍이라니! 두근두근 설렘과 함께 즉시 쌍안경 대여까지 체크해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탐조클럽 계정을 함께 팔로우하고 있는 후배에게 잽싸게 카톡을 보냈습니다.
“탐조 같이 갈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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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열흘 뒤, 2월 2일 일요일 아침 9시 2호선 도림천역 2번출구를 향해 어딘가 비슷한 기운을 풍기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계단을 올랐습니다.
동그랗게 모여 선 열다섯 명의 사람들.
동네숲탐조클럽을 운영하는 선생님의 오늘의 일정(약 2시간 동안 안양천을 따라 철새보호구역까지 거닐며 탐조를 한다) 설명을 듣고, 어색하지만 서로 인사를 나누며 소개를 마쳤습니다. 저와 후배처럼 첫 탐조를 친구 따라 온 사람도 있었고, 산에서만 탐조를 하다 넓게 트인 천으로 나오니 좋다는 분들과 인스타를 통해 그림으로 자주 보던 작가님들도 만났습니다. ㅎㅎ (아는 척 하기 그래서 속으로만 크게 인사했습니다)
가이드 선생님을 따라, 일단 서 있던 자리에서 몇 걸음 안 가서 흰 가슴 한가운데에 검은 줄무늬가 멋진 박새를 실컷 구경했습니다. 박새가 주로 잘 먹는다는 빨간 열매의 나무 이름도 궁금해하면서, 쌍안경을 보는 법(내가 보고 싶은 타깃을 맨눈으로 정한 뒤, 그 위치 그대로 시선을 유지하면서 쌍안경을 눈에 갖다댄다)도 배웠습니다. 처음엔 다들 쌍안경으로 새를 찾는 것보다 맨눈으로 보는 게 더 빠르다고 한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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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줄무늬가 무척 멋진 박새 (네이버 지식백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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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걸음 안 가서 또 오목눈이와 마주치고, 직박구리와 비둘기를 보고, 물 위에 한가로이 떠 있는 흰뺨검둥오리를 관찰했습니다. 오리 세 마리가 한꺼번에 고개를 물속으로 박고 수면 위로 엉덩이를 내밀고 있는 모습에 다같이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요(아 뭔데 이렇게 귀여운 거지). 쌍안경을 안 빌렸으면 어쩔 뻔했어,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가이드 선생님의 망원경(‘필드스코프’라고 하네요)을 통해 보면 저 멀리 있는 새와 눈을 마주칠 수도 있었는데, 정말 신기하더라고요. 어린이 시절에 이런 경험을 했다면 새 박사를 꿈 리스트에 넣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길 모퉁이에 잔뜩 우거진 덤불 속에서는 흔히 ‘뱁새’라고 부르는 붉은눈이오목눈이들이 쉼없이 들락날락했습니다. 잔뜩 모여서 쌍안경으로 쳐다보고 있으니, 산책하며 오가는 사람들이 “뭘 보고 있는 거예요?” 라고 물어오고, “저희 새 관찰하고 있어요.” “탐조 중이에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한 무리의 밀화부리 새떼가 들판에서 나무로, 나무에서 들판으로 날아 올랐다가 내려 앉았다가 반복할 때마다 오종종 모여 있던 열댓 명의 사람들도 “우아아아!” 맘껏 감탄하며 시선을 떼지 못했습니다. 새도 귀엽지만, 이 사람들도 참 귀엽잖아. 빙긋 웃게 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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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눈이오목눈이. 흔히 '뱁새'라고 한대요. (네이버 지식백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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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행에 방해되지 않게 일렬로 죽 늘어서서 새를 보고 도감을 찾아보고 관찰하는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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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 그곳에 수십 마리의 새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자동차가 빠르게 오가는 다리 밑 기둥 옆면에서는 민물가마우지 열몇 마리들이 앉아 쉬고 있었고요. 모두 오리라고 불렀던 새들은 쇠오리, 물닭, 알락오리, 고방오리, 청둥오리, 비오리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진 아이들이었어요. 그 곁을 자전거를 타고, 축구를 하고, 달리기를 하며 사람들은 저마다 지나갑니다. 함께 사는 지구의 모습입니다.
모처럼 한파 없이 볕이 따뜻한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탐조클럽 창단 이래 최대 종수 32종을 보는 기록을 세웠다고 합니다. 초심자의 행운이란! 그중 가장 귀여웠던 새, 저의 인생 새를 소개하며 그날의 기록을 마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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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참 귀여운 ‘힝둥새’랍니다. 가지에 앉아 꽁지를 위아래로 끊임없이 흔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기 맘과 상관없이 쉼없이 움직이는 고양이의 꼬리가 떠올랐고요. 연한 올리브 빛깔이 귀여움을 더합니다.(네이버 지식백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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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윤 소설집 <방어가 제철> (2022)
안윤 작가님의 장편소설 <남겨진 이름들>(문학동네)을 읽고 단숨에 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을 지나, 이 소설집을 읽었습니다. 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 펴내는 '트리플 시리즈'는 단편소설 3편과 에세이 1편으로 이뤄져 부담없이 읽기 좋은 시리즈입니다. 특히 소설가의 에세이를 꼭 1편씩 실어주는 것은 산문집을 내지 않는 소설가의 에세이를 보기란 쉽지 않은 것이어서 이 시리즈를 애정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을 읽던 중에 저의 소중한 선배가 세상을 떠난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레터가 발송된 날에 부고 소식이 도착했어요. 저의 가장 행복했던 직장 시절을 함께한 팀장님이자, 책을 만드는 일의 모든 과정에 애정을 쏟는 건 선배로부터 배웠습니다. 일로 만난 사이면서도 음악, 영화, 전시, 음식 등 통하는 게 많아서 종종 선배가 연락을 먼저 주실 때마다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 만나곤 했습니다. 늘 스트레스 받는 일은 없는지 물어봐주고, 업무에 있어서 어떤 마음을 가지면 좋을지 알려주고, 무리하는 줄도 모르고 달리고 있던 저를 멈춰 세우고 숨을 고르게 해주는 것도 늘 선배의 연락이었습니다. 누구보다 책을 좋아하고 책을 만드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했던 선배를 저는 기억합니다.
선배가 떠나고 나서야, 이렇게 큰 애정을 받은 사람이 저뿐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선배의 다정함은 무한히도 큰 사랑을 남겼습니다. 아직 믿기지가 않고, 선배하고만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이 여전히 많고, 보고 싶고, 목소리도 웃는 모습도 눈앞에 선합니다. 요즘은 주로 잠들기 전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선배와 나눈 이야기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추억 여행을 합니다. 그러다 하루는 꿈에 찾아와주기도 했어요. 그런 날이 또 왔으면 좋겠습니다.
애도하는 일상을 살아가는 중에, 이 책이 큰 위로가 되었어요.
저와 같은 그리움과 슬픔을 느끼는 분들이 있다면 이 책을 조용히 건네주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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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비컨티뉴드] ep.9 초단편 쓰기
소설은 장편, 경장편, 단편, 초단편 등 길이에 따라 구분을 합니다.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무엇이 달라질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대하소설은 점점 사라지고 200자 원고지 800매 분량의 장편소설도 400~600매의 경장편으로 한 권의 책이 됩니다. 단편소설은 원고지 80매 분량인데, 초단편은 30매 이내라고 합니다.
장강명 작가님은 초단편을 '딱 한 가지만 보여주면 되는 장르'라고 말합니다. 혹시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의 초판본에 함께 실었던 초단편 소설 <방주를 등지고> <은혜를 갚지 마세요, 어머니>(초판 한 정 두 편 중 한 편을 랜덤 증정했습니다)를 기억하는 독자님도 계실까요? ㅎㅎ
올여름에 찾아올 작가님의 초단편소설집도 기다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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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 새로운 코너 등장! <운전하는 김에>
호시탐탐 책장터리 외에 다른 코너를 만들고 싶었던 위트보이. 새해 들어서 첫 시도를 합니다(그런데 마이크를 챙기는 걸 잊어버린... 약간의 기계음 같은 목소리를 양해 부탁드려요ㅠ). 앞서 탐조 경험을 글로 전해드렸는데, 말로 풀어보는 탐조 이야기는 여기에 있습니다. 탐조를 다녀온 다음 날 촬영을 한 거라 보다 생생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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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유유히 레터는 여기까지입니다.
아래 답장하기 버튼을 누르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게시판이 열려요. 보다 쉽게, 서로의 피드백을 함께 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위트보이와 에디터리의 답장도 그 밑에 답글로 달아둘게요. 이번 주 답장도 잘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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