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몸이 너무 피곤해서(토, 일, 월 내내 행사가 있었습니다) 일찍 자려고 누웠습니다. 거의 잠에 들락날락할 시간에 카톡이 울려대서 몸을 일으켰습니다.

제 눈앞에 뜬 메시지는

“계엄?”

이게 무슨 말이야. 곧장 트위터를 켰더니 타임라인이 어지럽더라고요. 유튜브를 켜고 뉴스 라이브를 보니 윤 씨가 계엄령 선포를 한 방송이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 국회를 접수하러 헬기가 오고… 무장한 특수부대 대원들이 달려가고… 국회위원들이 담을 넘고… 정족수 150명을 채워 비상계엄령 즉시 해제가 가결되었고요.

그럼에도 불안한 마음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잠은 싹 달아났고, 더 이상 뉴스를 보기에는 분노와 무력감이 밀려왔던 밤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뉴스를 잠시라도 보지 않으면 너무 불안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방송국들은 국회며 정당이며 라이브를 24시간 내내 하는 중이고, 그에 대한 분석 뉴스도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일상을 분명히 지켜야 하고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데, 자꾸만 손에 잡히지 않더라고요. 일단 뉴스 시청을 멀리해야겠다, 싶었습니다. 모든 걸 실시간으로 알 필요는 없다고 저를 다독이면서도, 느닷없이 공포로 몰아넣은 계엄령이 다시 또 발발할까봐 잔잔한 불안은 계속되고 있지만요.

되도록 출근을 하고,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만나기로 한 약속을 미루지 않고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이 시국에 대한 욕도 하고, 불안한 마음도 털어놓고, 올 한 해 우리 잘 버텼다고 박수도 쳐주고, 맛있는 거 먹으며 내년의 계획도 나누었습니다. 조금씩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특히 토요일에 송년회를 하기로 했던 친구들과 만나 떡볶이를 맛있게 먹고는 그중 시간이 되는 친구와 함께 7일 여의도 국회 앞을 찾았던 건 무기력과 분노를 덜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이명박 - 박근혜에 이어 윤석열까지, 국민들이 일상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달려 나왔다는 것, “내란수괴 탄핵하라” 큰 목소리로 내지르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게 나뿐만은 아니었다는 걸 확인하는 것,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건 생각보다 큰 희망이 생기는 일이었습니다. 유튜브 댓글로는 느낄 수 없는 생생한 시위 현장의 인파가 우리가 원하는 새 시대에 대한 열망을 다시금 확인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날 투표는 국민의힘 위원들의 도망으로 무효가 선언되었지만, 국민은 지지 않았습니다.

함께 읽기에 좋은 칼럼을 나눕니다.

모쪼록 당신이 홀로 싸우고 있지 않기를 바라며.

광장은 평범한 개인을 정치적 주체로 탈바꿈시킨다. 시민으로서의 감각은 당연하게 누리던 것을 되돌아보게 한다. 불평을 하는 것과 실제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 사이의 거리감을 아득히 체감할 때, 보게 되는 것은 1㎜의 변화를 위해 애써온 사람들의 노고다. 그것은 뒤에 올 사람들을 향한 지극한 사랑이다. 보이지 않던 사랑을 보게 만드니, 어떻게 권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주 소비자가 2030 여성인 K팝 문화 안에는 그들 각자가 겪은 투쟁의 역사가 있다. 그들이 맞서는 상대는 다양했다. 지나치게 상업적 마케팅을 벌이는 기획사, 도덕적 문제를 일으키는 아티스트, 비윤리적 콘텐츠, 인권을 침해하는 경호업체 그리고 이 모든 것에 골똘하는 자신들을 하찮게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까지. K팝 팬들은 이처럼 ‘자기 자신’을 부단히 사회와 연결하며 싸워왔다. 자기 자신의 자리와 의미를 확장하는 것이야말로 큰 싸움에 필요한 준비된 투쟁심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그로부터 훈련된 ‘흥’이 어찌 모든 것을 냉소하는 태도보다 비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하이 (LeeHi) - The Christmas Medley

"내가 아는 트리 중에서 제일 노래를 잘 부르네" - 영상 댓글 중에서

연말이 무색해져버린 요즘이지만, 뉴스 영상이 지겨워질 때쯤 캐롤을 찾았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이하이, 뜬금없는 트리 복장이 웃음을 터뜨리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따스한 음색으로 크리스마스 노래들을 부릅니다.

한껏 지루해져도 좋을, 우리의 크리스마스를 기대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