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부터 이 메일을 쓰고 있는 수요일까지, 흐린 하늘에서는 비와 우박, 종종 눈이 섞여 내리는 중입니다. 지난 주에는 이러다 진짜 봄이 오겠구나 싶을 정도로 좋았는데, 으슬으슬 춥고 축축한 기운이 떠나지 않는 요 며칠 동안에는, 왠지 힘이 쑥 빠지고 걷는 것도 평소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습니다.
간혹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선잠에 들었다가 새벽에 깹니다.
그리고 잠이 안 오죠.
실제 위기가 닥쳤거나 마음이 힘든 일이 발생한 건 아니고요.
다만 저 멀리 미뤄두었던 어떤 감정들이 파도 치듯 밀려들어와, 대전에 계신 부모님의 건강이 느닷없이 걱정되기도 하고, 하루 하나냥의 컨디션이 신경 쓰이기도 하고, 저의 몸 상태도 갑자기 안 좋은 듯 느껴지고(2024 건강검진 대상입니다. 하루 빨리 예약을 해야 할 텐데요...)요.
내가 했던 말, 남이 나에게 했던 말들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한밤중에 떠오르는 이런 말들은 대부분 좋았다기보다는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지. 실수였을까. 참았어야 했다. 아니, 근데……’라고 꼬리를 물어요. 그렇게 심장 박동수가 서서히 증가하다가 잠을 다 내쫓고 침대에서 스르르 내려옵니다.
멀리 떠나간 잠은 계속 누워 있는다고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잘 아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멀쩡해진 정신에 휘척휘척 거실로 나오면, 자는 줄 알았던 고양이들이 제 뒤를 따라 나오기도 합니다. 책장 앞 바닥에 앉으면 카페트 위로 하루가 와서 몸을 기대고 눕습니다.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하루를 쓰다듬으며, 책장에 꽂힌 책등을 가만히 읽어 내려갑니다. 에세이를 읽을까 소설을 읽을까, 진도가 나가지 않아 덮어둔 수많은 책들 가운데서 눈맞춤으로 그때의 필(Feel)에 따라 뽑아듭니다.
어젯밤에는 장류진 작가님의 소설집 <연수>였습니다. 단편소설은 딱 한 편 읽고 자기 딱 좋습니다. 수면을 위한 독서로 거의 10년 이상을 고수해온 저만의 처방법이랄까요. 장편소설은 너무 재밌으면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잠을 미루게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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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시트콤 한 편 본 듯, 대사가 유난히 생생했던 <라이딩 크루>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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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읽은 수록작 중 <공모>는 조직 생활 17년차인 주인공 '현수영'이 신입사원 시절부터 차장, 팀장(부장)이 되기까지 사수로 끌어준 상사에 대해 느끼는 만감 교차와, 그 상사가 좋아해서 회식이라면 무조건 가야만 했던 ‘천의 얼굴’이라는 호프집(“천의 얼굴은 새중앙에너지의 법인카드로 쑥쑥 성장했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호프집이 지겨워서 팀장이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회식 문화를 바꿨다는 주인공의 이야기에 “맞아, 맞아! 대체 회식할 때마다 그놈의 노가리집을 1차로 잡았던 사장은 정말 지긋지긋했어!!!” 라고 까마득히 잊었던 기억 속 짜증에 덧대어 내적 쾌감을 느꼈습니다. 이런 게 장류진 작가의 장점이죠. K직장인의 뼛속까지 깊은 애환을 속시원히 욕해주는 그 장면들.
이렇게 재밌는 소설 한 편 읽고 나면, 책을 펼치기 전까지 저를 괴롭히던 현실 속 일어나지 않은 불안의 파도는 잠잠해집니다. 그리고 다시 침대로 쏙 들어가 이불을 끌어안고 잠에 듭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 모든 걱정은 다시 수면 아래로 내려가고, 오늘 할 일의 목록을 생각하며 씻으러 가고요.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게, 다시 하루를 살게 하는 힘이라고 인정하게 됩니다.
🌿
사무실에서 하루가 시작되면 풀잎의 이슬이 증발하듯 노스탤지어가 말라버린다.
이제 인생은 신비하거나, 슬프거나, 괴롭거나,
감동적이거나, 혼란스럽거나, 우울하지 않다.
현실적인 행동을 하기 위한 실제적인 무대일 뿐이다.
_알랭 드 보통 <일의 기쁨과 슬픔> 중에서
여러분들의 마음 다스리기 법도 나눠주시면 실천해보겠습니다.
답장 게시판으로 아낌없이 알려주세요.
창밖에는 어느새 눈이 펑펑 내립니다.
도대체 작가님의 <기억을 먹는 아이>를 읽고 나니 눈송이를 볼 때마다 저 구름 위에서 “하나 둘 셋!” 씩씩하게 외치며 땅으로 뛰어내리는 아이들을 상상하게 된다던 어느 독자님 리뷰를 떠올리고 웃게 됩니다.
모쪼록 비워내고 가벼워지는 구름처럼, 하루를 보내시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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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픈 현실과 판타지의 환상의 조합, 강석희 <내일의 피크닉>(책폴)
스무 살이 되어 ‘보호 종료 아동’이 된 수안은 자립지원금으로 작은 원룸을 얻고 중고 오토바이를 사서 배달을 하며 지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많이 와서 배달을 하다가 심하게 넘어졌던 날, 더 이상의 배달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문이 열려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방 한가운데에는 보고 싶었던 친구 연이 태연스레 앉아 컵라면을 먹으면서 들어오라고 하죠. 그런데 수안은 연과 부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고 앉습니다.
연은, 1년 전 여름에 죽었습니다.
첫 시작부터 몰입이 될 수밖에 없는 설정과 수안을 찾아온 연이 왜, 어떻게 찾아왔을까와 더불어, 어쩌다 젊은 나이에 죽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미스터리적 요소로 끝까지 읽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비가 세차게 내리던 밤에 읽어서, 더욱 잘 어울리는 소설이었고요.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다음 주 팟캐스트 <두둠칫 스테이션>에 책폴 출판사 이혜재 대표님을 모셨습니다.🤭 녹음을 위해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작가의 말 중에 일부만 보여드릴게요.
어서 읽고, 담주 화요일(27일) 방송 함께 들어주세요~!
신규 교사 시절에 공업계열 특성화고등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3학년 담임을 맡지 않아서 현장 실습과 관련된 업무를 해 본 적이 없고,
담당 과목 역시 국어이기 때문에 이방인처럼 보낸 3년이었습니다.
그래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후회가 많이 남습니다.
더 따뜻하게 손잡아 줄걸, 더 다정하게 귀 기울여 줄걸.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고 어떤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마음을
오래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보호 종료 아동이자 특성화고 출신인 청년들의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을 정했던 날, 플레이리스트에 처음으로 담았던 노래는 H.O.T.의 〈아이야!(I yah!)〉였습니다.
불현듯 떠올랐고 오랜만에 들어 보았고 노랫말에서 따 온
‘네가 속한 세상’은 플레이리스트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노래와 맞닿아 있는 사건(1999년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
그리고 죽음들은 지금의 저에게 일하다 죽어 간 청년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의 이민호,
여수해양과학고등학교의 홍정운,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의 홍수연,
쿠팡 칠곡물류센터에서 과로사 한 장덕준
그리고 소설을 쓰는 동안에 코스트코 하남점에서
온열 질환으로 사망한 김동호까지.
이들의 죽음은 제게 사고가 아닌 재난으로 다가왔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고,
제가 놓친 것들을 짚어 보는 마음으로 『내일의 피크닉』을 썼습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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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팟캐스트 <두둠칫 스테이션> on air!
EP.89 '진국' 듀이오가 말아주는 야마모토 사호 신작 만화 '데쓰오와 요시에'(임진아 황국영) [커피타임]
유유히에서 만화 '데쓰오와 요시에'가 출간된 뿌리를 찾다 보면, 전작 '오카자키에게 바친다'가 좋다고 목 놓아 외치던 임진아 작가님이 나오고, 신작 검토를 맡겼더니 캐릭터 분석에, 장별 요약에, 완벽한 검토자 평까지 해낸 황국영 번역가가 나옵니다.
사호가 되고 싶은 황국영(번역함) & 오카자키가 되고 싶은 임진아(추천사 씀)
좋아하는 마음은 이렇게 힘이 셉니다 방송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는 중!!!!
✨ 뭔가를 좋아하거나 하고 싶은데, 직업이 될지 확신이 없는 백수 시기의 사호를 보며 어떤 다른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책(황국영 번역가님)
✨ 한 만화가가 어떻게 자랐는지, 출판만화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좋아할 책(임진아 출판만화 응원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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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데쓰오와 요시에> 전자책 선출간 이벤트!
지극히 평범한 가족이라 퉁치고 있는 개그 만화
<데쓰오와 요시에>를 전자책으로 바로 만나볼 수 있는 기회!
100자평 혹은 마이리뷰를 남겨주시면 1000원 ebook 적립금도 받는 기회! 🤝
지금 만나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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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기억을 먹는 아이> 알라딘, 예스24, 교보문고 굿즈 대 공개! ❄️
드디어 서점별 굿즈를 모두 준비했습니다. (헥헥! 정말 바빴어요!!!! 출간과 함께 동시에 마련하지 못해서 죄송해요.. 바빴던 이유 다 아시쥬 ㅠ)
도대체 작가님의 굿즈가 필요하신 분들은 친구를 위해 한 권 더 주문하고 굿즈는 내가 챙기고! 😘 미리 고맙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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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 시스템이 바뀌었습니다.
페이지를 누르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게시판이 열려요. 보다 쉽게, 서로의 피드백을 함께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2024 새해부터 변경되었음을 알립니다. 위트보이와 에디터리의 답장도 그 밑에 답글로 달아둘게요. 이번 주 답장도 잘 부탁드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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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유유히 레터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주 레터는 위트보이 님이 보내드릴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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